그들은 가나안에서도 실패했다(느9:19-31)
그들의 불평 속에서도 하나님은 큰 긍휼로 그들을 돌보셨다.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셨다. 옷도 낡지 않았고 발도 부르트지 않았다. 여러 민족을 그들에게 넘기며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자기가 짓지 않은 집과 우물, 포도원 등을 얻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돌이키려고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죽였다. 육신을 고집하며 죄를 멈추지 않았다. 징계를 받으면 돌아왔다. 평안해지면 다시 주를 떠났다. 주께 등을 지고 부패와 타락의 길을 택했다. 결국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진 그들은 가나안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믿음의 길에서 이스라엘은 또 실패했다.
이런 역사의 기록은 창조주의 은혜와 함께 선민들의 부패와 타락상을 지적한다. 성경이 계속 반복하는 내용이다. 누구나 주 하나님의 영광, 그 사랑과 은혜를 깨달을 때는 감격한다. 구원을 경험하고 주의 신실하심과 권능을 찬양하며 기뻐한다. 이 시대에도 그런 택하심, 곧 구원의 자격과 명분을 얻는 은혜는 이어진다. 그러나 감사와 기쁨의 체험으로 시작한 선민들이 실패한 역사를 보면 실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쉽지 않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과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고 어떤 과정으로 인도하셨는지 안다. 열 가지 재앙과 출애굽, 그리고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넌 그들은 기뻐 춤추며 주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광야의 시련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며 불평했다. 시내 산에서 언약식을 체결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불안을 느끼자 그들은 곧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했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은혜로 강을 걸어서 건넜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 강한 민족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주께 드릴 마음을 세상의 풍요와 번영, 육신의 쾌락에 빼앗겼다. 거룩한 선민의 정체성을 잊었다. 창조주와 그 말씀을 등지고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따르며 믿음의 길에서 빗나갔다. 말씀을 전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로 말미암아 그들은 죄를 깨닫는다. 회개와 부흥의 운동을 일으킨다. 그런 회개와 부흥의 역사는 개인의 삶에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절반의 믿음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세상과 육신에 끌리는 자기를 철저히 죽이는 것이다. 생활의 현장에서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생활화, 곧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가짜 하나님 되기를 멈추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며 그 뜻을 따라 소명을 이루는 삶이 드러나야 한다. 오늘도 그런 우리를 위해 십자가, 곧 별세와 부활의 길을 여신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에 이를 수 있기를, 몸이 있는 현장에는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고 택하시며 하늘의 자녀로 세우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선민들의 실패를 통해 죄와 저주에 찌든 우리가 온전한 구원의 믿음에 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습니다. 그러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림으로 영광의 자리에 오르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께 마음이 사로잡히고 그 십자가에 갇힘으로 하늘 아버지의 유일하신 있음의 존재감을 얻고 그 좋음을 열망하게 하셨습니다. 이 믿음과 사랑을, 평강과 기쁨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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