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여호와를 알기 위해 마음이 따를 길(호6:1-1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일으키시리니... 그러므로 우리기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이른 비,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힘써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창조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무시하고 등을 돌렸다. 다른 것들을 사랑하며 따라갔다. 선지자는 돌아오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그들은 태초의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죄와 죽음의 저주 가운데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자들은 주께서 고치며 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힘써 너희 주 하나님을 알라 명한다. ‘힘써’로 표현된 단어는 ‘추적한다, 따른다’의 의미가 있다. 개가 사냥감을 끝까지 추적하듯 그렇게 쫓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쫓아가서 만나 껴안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대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이 드리며 밀착하는 것이다. 그 느낌을 알고 사랑과 기쁨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아침에 해가 떠오르듯 반드시 그 앞에 나타나실 것이다. 씨를 뿌릴 때에 내리는 이른 비, 또한 열매가 익을 때의 늦은 비를 보며 농부가 기쁨을 느끼듯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느끼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선민의 특권이다. 피조물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며 기쁨이 아닐까? 그러나 죄와 저주에 젖은 상태로는 그런 체험이 불가능하다. 영적 음란함으로 이미 마음이 더러워져 주께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재물과 권력, 명성 등이 붙어서 살처럼 된 마음은 그런 세상의 것들을 찢어내야 한다. 유착이 심한 경우에는 마음이 죽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실 것이다. 그 정결의 과정이 구약에서 드려진 어린 양의 상번제이며, 신약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연쇄 과정으로 완성되지 않았는가? 그 대속의 십자가에 연합할 때 우리 마음도 세상과 육신에 대한 유착을 끊고 하늘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이며, 그 결과로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며 영생의 천국을 누릴 것이다. 오늘도 주님이 앞서신 그 십자가 복음의 길을 힘써 의식함으로 그 안에서 우리 마음도 하늘에 올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닿으며 그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땅에서는 그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사랑의 주 하나님, 만물과 역사가 주의 한없는 사랑과 공의, 지혜 아래 있으며 전능하신 주권으로 이끌고 계심을 믿습니다. 힘써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부패한 세상과 육신의 언어체계로는 불가능합니다. 주님이 말씀과 함께 몸으로 보여주신 십자가 별세와 부활의 길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과 기쁨을 체험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음에 비추시는 빛을 따라 생명과 진리의 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한순간도 십자가의 주님을 놓치지 않고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하소서, 그 영광의 길에서 실족하지 않게 하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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