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그 말씀은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다(계10;1-11)

되어지는대로 2024. 12. 5. 06:06

그 말씀은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다(10;1-11)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하니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그 두루마리를 먹으니 입에는 다나 배에는 쓰게 되더라.” 일곱 번째 천사의 나팔 소리가 울리기 전에 다른 천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천사는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얼굴은 해와 같다. 발은 불기둥 같다. 사자의 부르짖음처럼 외친다. 일곱 천둥소리가 들린다. 기록하지 말고 두루마리를 먹으라 하신다. 요한이 먹으니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썼다. 그 의미를 생각한다.

 

   어제 본문은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재앙이었다. 오늘 본문은 그들과 함께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임하는 말씀이다. 다른 천사가 등장한다. 무지개는 노아 시대의 대홍수 후 주어진 복된 약속을 의미한다. 해와 같은 얼굴은 재앙에서 구원하시는 주를 상징한다. 불기둥 같은 발은 땅과 바다의 죄와 저주를 불살라 없애는 권능을 의미한다. 일곱 천둥은 세상의 소리를 압도하는 하늘의 소리라는 뜻이다. 신자들은 속히 구원을 받는다. 스스로 잘해서 구원받지 않는다. 사실 심판이 마땅한 죄인들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약속, 곧 죽음의 저주를 이기는 구원에 이른다. 그 축복의 말씀은 글로, 기록을 통해 전해질 수 없다. 책으로는 그 약속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성령으로, 믿음으로 전인적인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 그 복음은 선민들의 마음에 천둥처럼 크게 들린다. 처음 받아서 먹을 때는 꿀처럼 달다. 그러나 배 속에서는 쓰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배에는 달게 느껴져야 하지 않나? 그러나 창조와 구원의 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우리의 배에는 재앙처럼 느껴진다. 사람의 체질이 이미 죄와 저주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타락한 세상과 육의 삶이 더 익숙하고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성적 죄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어린 양의 번제단, 십자가에서 부패한 자기가 죽어야 한다. 이론과 교리를 아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몸으로 대속의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육의 환난을 이겨야 한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 별세와 부활의 길을 따라 마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올라야 가능하다. 그것이 성도로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이다. 그러나 저주받은 땅에서 몸으로 사는 동안에는 세상의 좋음을 추구하며 만족하는 체질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으며 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닌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오늘도 십자가의 생활화와 하나님 사랑의 생활화로 육의 본성을 이기는 은혜의 교제가 깊어지기를, 받은 약속의 말씀이 입과 배에 모두 달게 느껴지기를 기도한다.

 

   언약의 주 하나님, 육의 사람인 우리에게는 영의 길을 따르는 삶이 낯설고 어색합니다. 부패한 세상을 떠나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말씀은 처음에는 꿀처럼 달게 느껴지나 삶의 현장에서는 고통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늘 문이 열리고 그 영광을 본 스테반과 성도들은 몸의 죽음조차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육의 환난에서 벗어나 하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오르신 십자가 길을 바라봅니다. 우리 마음도 함께 오르게 하소서. 영생과 진리의 하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주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이 우리를 죄에서 영원한 승리로 이끄심을 깨우치며 찬양하게 하소서. 무한한 권능과 영광과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