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과의 결혼이 성도의 목적이다(계19;1-10)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의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는 어린양의 결혼식이 이르렀고 신부가 혼인 준비를 갖추었으며 그녀가 밝고 깨끗한 고운 삼베를 입을 것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고운 삼베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1절의 이 일은 바벨론 음녀가 제거된 상황을 의미한다. 모두 기뻐한다. 이제 어린양의 결혼식이다. 신부는 구원의 믿음에 이른 성도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일곱 인과 대접, 나팔 재앙은 어린양과 성도의 결혼, 곧 그 완전한 결합을 위해 성도에게 일어나는 역사였다. 성도의 삶의 여정과 목적을 생각한다.
요한이 본 삼대 칠중 재앙의 마지막은 바벨론 음녀의 죽음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비로소 성도는 어린양의 신부로서 결혼식 준비가 되었다. 결혼은 완전한 결합을 상징한다. 어린양이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먼저 정혼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신랑이 신부를 집으로 데려오며 완성된다. 그러므로 정혼에서 결혼에 이르는 기간에 성도는 지금까지 예언한 일곱 재앙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끝까지 시험을 견디며 이기는 자는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 옷이 성도의 옳은 행실이다. 그런데 모든 과정을 통과했고 결혼하는데 왜 또 옳은 행실이 필요할까? 음녀는 이미 죽었는데 그녀를 사르는 연기가 영원토록 올라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예언이 성도의 몸이 아직 땅에 살아있을 때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적 사건이라는 뜻이 아닐까? 택하신 자는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의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여전히 저주받은 땅에서 육체로 살아간다. 죄와 저주의 체질은 쉽게 벗어지지 않는다. 타락한 상태로는 어린양과 결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나서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땅에서 상번제의 제물로 드려지며 죽고 다시 살아나신다. 일곱 인을 떼고 일곱 대접과 일곱 나팔의 재앙을 주도한다. 마지막으로 성도의 마음속에 있는 바벨론 음녀를 제거한다. 음녀는 세상을 향한 탐심, 곧 호화로운 삶의 욕망을 의미한다. 비로소 마음이 깨끗해진다. 어린양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는 남은 삶을 옳은 행실로, 공생애로 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마음에 있는 음녀의 잔재, 곧 스스로 판단하며 욕구하는 죄 된 주체성을 십자가 제단에서 죽여 불태워야 한다. 그 연기가 계속 올라가야 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 곧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 이 모든 일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신 뜻, 그 은혜로 성도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오직 주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찬양할 것이다. 오늘도 내 안에서 육의 욕망을 사르는 연기가 올라가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으로 하늘의 펑강과 기쁨을 누리며 사랑으로 행하는 옳은 행실이 생활의 현장에서 드러나기를 소원한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의 주 하나님, 저주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며 하늘의 신부로 주님과 결합하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정결한 마음과 옳은 행실로 선하신 뜻을 이루며 살기 원합니다. 매일 십자가의 생활화를 통해 세상과 육신의 탐심을 사르는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게 하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아버지의 선하신 뜻과 그 영광이 우리 가운데 드러나게 하소서. 구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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