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명령에 따라 멈추고 움직이는 광야의 선민들(민9:15-25)

되어지는대로 2025. 4. 4. 05:27

명령에 따라 멈추고 움직이는 광야의 선민들(9:15-25)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해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출애굽한 선민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장정만 60만인 이스라엘, 그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먹고 살 방법이 없었다. 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해야 했다. 그들은 행복했을까? 황량한 광야에서 명령에 따라 멈추고 또 움직이는 선민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더는 멸시당하며 노역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초월적 권능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탈출시키셨다. 광야에 들어왔다. 제대로 살 수 없는 황량한 땅이다. 먹고 마실 것도 없다.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다.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마음대로 육신의 만족과 기쁨을 추구할 수는 없다. 그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까. 마치 유괴나 납치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은 없었을까? 광야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는 2주일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40년을 광야에서 지내야 했다. 60만 명의 장정 중 단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갔다. 모두 광야의 시험 속에 쓰러졌다. 선민으로 택하심은 받았으나 실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광야에서 방랑하다가, 시쳇말로 뺑뺑이 돌다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법을 교육하며 훈련하셨다. 시험하셨다. 선민은 보이지 않는 영이신 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 그 주권과 권능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은 내 심장을,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몸과 마음과 모든 삶을 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의 고난 속에서 계속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평하며 원망했다. 심지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영생의 구원에 합당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 선민들의 이 실패의 광야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아닐까? 하나님은 영생의 자녀로 택하신 자들을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구별해 불러내신다. 처음에는 그 은혜에 감사와 기쁨으로 답하며 순종한다. 그러나 세상의 풍요와 쾌락에 젖은 마음은 곧 흔들린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를 하나님처럼 여기는, 선악과의 결과인 죄와 죽음의 저주에 이미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육체가 황량한 광야에서 명령에 따라 멈추고 이동하는 삶이 좋을 리 없다. 물론 믿음의 사람들도 있다. 주님이 탄식하시고 성경이 증언하는 것처럼, 온전한 믿음에 이르며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러나 성도라면 광야로의 부르심이 납치가 아니며 영생의 구원, 곧 천국으로의 초대임을 깨달을 것이다. 놀라운 아버지의 사랑과 하늘의 영광을 믿고 소망하며 찬양할 것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과 은혜의 손길에 감사하며 자기 전부를 드릴 것이다. 오늘도 세상의 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하늘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영생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믿음도 구원도 없습니다. 혼돈과 공허, 어둠의 땅에서 망할 것입니다. 보이는 말씀, 생명의 빛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가 얼마나 죄와 죽음의 저주 속에 사는지 보게 하셨습니다. 영생과 진리의 구원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의 주님 안에서 우리 마음도 하늘의 아버지께 이르기 원합니다. 당시 사도와 성도들처럼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는 참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그 은혜와 그 영광을 증언하게 하소서. 성령을 베푸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으로 이끄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