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의 무기, 다윗의 무기(삼상17:41-49)
골리앗의 무기, 다윗의 무기(삼상17:41-49)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외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간다.” 흥분한 골리앗이 다가온다. 다윗도 그를 향해 달려나간다.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물매로 던졌다. 이마에 돌이 박히고 그는 쓰러졌다. 거구의 골리앗은 최고의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갑옷과 칼, 창, 방패 등 당시 가공할 무기들이었다. 다윗은 목동이다. 주머니에 조약돌 몇 개와 돌을 날리는 물매를 가졌다. 그의 무기를 생각한다.
싸움은 한순간에 끝났다. 골리앗이 돌을 맞고 쓰러졌다. 다윗이 그를 죽였다. 무기는 시냇가의 조약돌이었다. 물론 승패의 원인은 돌이 아니다. 다윗의 무기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다윗이 속한 세상과 골리앗이 속한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했다. 항상 하늘의 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할례받은 선민으로서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있다는 자아의식으로 무장했다. 그러므로 골리앗의 힘과 무기를 겁내지 않았다. 전능하신 주가 지금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왕과 군사들도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골리앗과 동일한 세상을 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선은 물리적인 상황만을 보고 있다. 동일한 할례를 받고 같은 경배를 드리지만 다윗의 할례와 경배는 그들과 달랐다. 그 의미를 일상의 삶에서 적용하며 생활화된 믿음이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천국을 바라보며 그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사랑받는 자녀라면 다윗처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사람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각종 스펙을 쌓으며 최고의 무기들을 장착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신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과연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천국의 자녀인가? 왜 나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가? 하늘의 아버지께 이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동선에 마음이 연합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전능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죄를 짓고 에덴에서 추방된 인류는 보이는 세상과 육신에 매여 죄와 죽음의 길을 걷지만, 은혜로 택하신 자녀들은 살아계시며 섭리로 통치하시는 주를 알고 그 부르심을 따라 새 삶을 시작합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생각하며 성령을 따라 살아갑니다. 오늘도 다윗처럼 생활의 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아버지께서 마음을 두신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께 마음이 이르며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믿음의 길을 담대히 걷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