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다윗이 느끼는 사울의 존재감?(삼상24:1-15)

되어지는대로 2023. 3. 17. 06:18

다윗이 느끼는 사울의 존재감?(삼상24:1-15)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다. 다윗 일행이 숨은 동굴에 그가 용변을 보려고 들어 왔다. 부하들은 즉시 그를 죽이자고 했다. 그러나 긴 옷을 내려놓은 그의 뒤에서 다윗은 옷자락만 베어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부하들은 좌절하지 않았을까? 대적을 죽이고 왕권을 뺏을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보스에게 운명을 맡길 수 있을까? 과연 다윗은 사울을 존중해서 그를 살린 것일까? 그의 마음을 생각한다.

 

   다윗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며 개선하는 사람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무죄와 사울의 광기를 밝히고 여론을 조성하며 혁명을 일으켜야 했다. 군사들을 모으고 전쟁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그저 수동적으로 피하기만 할 뿐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이다.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감히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자기 운명을 자기가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한다. 하나님이 그에게 가장 큰 현실이며 존재감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울은 그에게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울이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주께서 보호하신다면, 그에게는 자신을 죽일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빌라도 앞에서 그런 믿음을 보이지 않았는가? 예수께 빌라도가 존재감이 없었던 것처럼 다윗에게 사울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러나 부하들에게 사울의 존재감은 너무나 크다. 당장 죽여야 할 적으로 보인다.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윗의 현실감이 맞다. 사울은 그를 죽일 수 없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존재감 때문이다. 사울의 존재감 때문이 아니다. 오늘 내게 가장 큰 존재감의 대상은 무엇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인가? 피조물에게 가장 큰 존재감의 대상은 조물주 하나님이시다. 독생자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유일한 분이 아니신가?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으로 당당하게 세상의 논리와 요구에 대응할 수 있기를 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미천한 인생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계시하시며 영생의 자녀로 부르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은혜와 진리의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죄와 죽음의 땅에서 별세와 부활의 나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참된 현실감을, 존재감을 얻기 원합니다. 세상은 지어진 것이며 오직 유일하게 스스로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감과 영원한 좋으심, 그 주권, 그 주체성 앞에서 모든 것은 일시적이며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도 영원한 나라와 의를 구하며 부활과 영생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하늘에서 세우신 뜻을 이루며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