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웃사의 실패...(삼하6:1-15)
다윗과 웃사의 실패...(삼하6:1-15)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기억했다.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온 궤는 방치되고 있었다. 그 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려 한다. 군사들과 함께 아비나답의 집에 갔다. 새 수레에 실었다.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수레를 몰았다.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었다. 웃사가 손을 뻗어 궤를 붙들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웃사는 즉사했다. 다윗은 화가 났다.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보냈다. 그들의 반응과 실패를 생각한다.
법궤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다. 만군의 여호와, 만유의 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상징한다. 다윗은 그 궤를 성으로 옮기며 특별한 축복을 기대했을 것이다. 강한 국력과 왕권을 소원했을 것이다. 성대한 의식과 함께 성으로 옮긴다. 웃사는 그 집의 아들이다. 오랜 세월 그 집에서 법궤를 모셨다. 그 권리를 인정해서 영광의 자리를 허락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그들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에 거룩히 여기지 않았다. 궤를 바르게 대하는 태도를 모른다. 물건을 대하듯 다루었다. 본래 궤는 정하신 율법대로 레위인들이 직접 메고 옮겨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자랑하는 최신식 수레로 그들이 운반한다. 자기 소유물을 관리하듯, 자기 관할권을 자랑하듯 법궤를 대했다. 하나님은 그런 웃사를 치셨다. 다윗은 놀라며 분노한다. 열심과 정성이,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이런 상황의 즉각적인 분노는 선악과를 취한 인류에게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판단과 느낌이 아닐까? 다윗은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을 포기한다. 법궤를 대하는 사람들의 잘못도 알지 못했다. 후에 그는 잘못을 깨우친다. 법궤를 대하는 바른 태도를 배운다. 오늘 우리는 만유에 대한 주권과 섭리의 하나님, 그 거룩한 이름 앞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있을까? 예기치 못한 상황, 사건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주체성을 따라 분노가, 낙심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가? 고난에 대한 잘못된 태도,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분노와 낙심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늘 주님의 십자가를 의식하며 자아를 죽이는 길, 즉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거룩하신 주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조물주 앞에서 스스로 선악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분노와 낙심에 사로잡히는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소서. 죄에 젖은 마음으로는 거룩한 뜻을, 섭리와 주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며 함께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게 하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그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늘 의식하며 범사의 감사를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오직 믿음으로, 순종으로 거룩한 길을 따르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