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죄인의 무력함, 고통을 수용하다(삼하13:15-29)

되어지는대로 2023. 5. 3. 20:01

죄인의 무력함, 고통을 수용하다(삼하13:15-29)

 

   암몬의 악행이 다윗에게 알려졌다. 다윗은 몹시 분노했다. 그러나 후속 조치의 기록이 없다. 다말의 오빠 압살롬도 분노했다. 앙심을 품었다. 그러나 드러나게 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 사건은 묻혀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2년을 기다린 후 압살롬은 형 암몬을 속이고 죽인다. 그리고 외가인 그술왕에게로 도망간다. 자식의 패륜적 악행을 징계하지 않은 다윗의 실패라고 사람들은 해석한다. 무능한 아버지 다윗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렇게 읽고 끝내면 안 될 것같다. 십자가 복음의 관점으로 다윗의 무력함을 생각한다,

 

   공의의 심판과 자녀 교육의 관점에서 다윗은 실패했다. 두 아들을 잃는 재앙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으로 성경의 기록과 사건의 의미를 찾는다면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미 다윗은 밧세바 사건으로 범죄했다. 통렬한 회개를 했다. 하나님께 다시 받아들여지는 은총을 경험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은 죄의 댓가로 재앙이 그의 가정에 끊어지지 않을 것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밧세바가 낳은 아기가 아팠다. 혹시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기를 살려주실까 기대하며 다윗은 금식 기도를 했다. 그러나 그 아기를 데려가셨다. 이미 경험이 있는 다윗은 암몬의 강간 사건을 듣고 재앙이 이어진 것을 알았다. 그 악행이 자신의 범죄와 죄과 때문인 것을 깨닫고 피할 수 없는 재앙과 고통을 수용하려는 것이 아닐까? 암몬도, 다말의 불행도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라는 자책감으로 무력함을 택한 것이 아닐까? 고통을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역사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능해진 그는 암몬을 제대로 징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다윗 가문의 재앙은 그의 말년, 아도니야의 반란 사건까지도 계속된다. 그는 재앙이 자신의 죄에서, 그리고 인간 마음의 부패함과 악함에서 비롯된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다윗의 인생의 의미는 골리앗을 죽인 승리에 있지 않다. 죄인으로서 자기 뜻과 주체성을 버리고 죄과의 고난과 고통을 수용하며 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회복하는 삶에 있다. 조물주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할 인류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판단하며 하나님의 라이벌로 피조된 세상을 사랑한다. 지어졌고 결국 사라질 세상의 것에 마음을 쏟는 죄에 사로잡혀 있다. 영생의 구원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육신에 매인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몸으로 오시고 죽으셨다. 모든 죄과를,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세상을 떠나는 죽음과 부활, 승천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 성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리심을 받아야 한다. 육신의 끝날까지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놓치지 않으며 청결한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야 한다. 오늘도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늘의 아버지께 그 마음이 닿기를 소원한다.

 

   사랑과 공의의 아버지 하나님, 죄와 사망에 갇힌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을 베푸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사랑으로 지으시고 공의의 길로 부르셨으나 여전히 자기를 주장하며 악에 사로잡힌 자녀들에게 주님의 십자가 별세와 부활의 사역으로 영생의 구원을 허락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하며 육신의 집착과 주체성이 죽기를 원합니다.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덮으소서. 순종의 믿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그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택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