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이의 저주 앞에서...(삼하16:1-14)
시므이의 저주 앞에서...(삼하16:1-14)
다윗 일행이 도피한다. 사울 집안의 시므이가 나타났다. 다윗을 저주한다. 살인자라 부른다. 네가 사울의 집에 흘린 피를 하나님께서 네 아들을 통해 갚아주신다고 외치며 돌을 던진다. 아비새가 그를 죽여버리겠다고 한다. 다윗이 말한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데 이 베냐민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라 명하셨으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어라.” 그는 자포자기하는 것일까? 저주 앞에서 사울과 다윗의 차이를 생각한다.
성경은 다윗의 죄와 재앙을 연결시킨다. 다윗은 재앙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안다. 아마 그는 사울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주께 죄를 짓고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시바의 이야기를 듣고 사울의 집이 몰락한 것을 기억했다. 시므이의 저주를 들으며 그들의 상처와 원한이 얼마나 큰지도 알았다. 비록 언약은 받았지만 사울의 몰락처럼 자신의 집도 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공의의 하나님, 그 심판의 권능 앞에 자신이 죄인으로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한다. 왕권에 대한 애착과 자존심도 버린다.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을 내어놓는다. 사울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왕권에 대한 집착과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마음에서 버린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며 온 마음을 드린다.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아까워하며 주를 잃을 수는 없다고 고백한 아브라함과 같다. 사도 바울과 초대 교회의 신자들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십자가 복음을 생활화하는 믿음이다. 오늘 우리는 위기와 두려움 앞에서 무엇을 끌어안을 것인가? 여전히 돈과 명예, 육신의 건강과 즐거움인가?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결국 가져가실 것들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을 고백하는 믿음이 우선이 아닐까? 오늘도 주님과 함께 마음이 세상을 떠나 생명과 기쁨의 원천이신 하늘의 아버지께 이르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육신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며 하늘 아버지의 유일한 있음과 좋음을, 영원한 주권을 알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세계가 자녀들에게 준비되어 있으며, 하늘에 우리가 거할 곳이 많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 예수의 그리스도 사역을 통해 열린 하늘 구원의 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접속하게 하소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마음은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육신의 삶으로는 선하신 뜻을 이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