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다(애3:55-66)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다(애3:55-66)
선지자가 간구한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구원을 요청하는 내 부르짖음에 귀를 막지 마소서. 내가 주를 부를 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께서 내 소송을 들이시고 내 생명을 구속하셨습니다.” 그의 기도에 주께서 응답하셨다. 깊은 저주 속으로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주께 죄를 지었다. 심판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의 멸망을 원하지는 않으신다. 남은 자들이 주께 돌아와 생명을 얻기를 원하신다. 선지자도 그것을 안다. 그의 고통을 아시는 주께 부르짖는다. 전능하신 주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다. 생명을 구속하시는 은혜의 손길을 바라본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는 무고한 고난을 당하셨다. 선민과 세상으로부터 격렬한 분노와 저주를 받았다. 살이 채찍에 찢기고 떨어져 나갔다. 창이 허리를 뚫는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십자가에 달리셨다. 어둠이 땅을 덮었다. 몸이 죽고 장사되셨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살리셨다. 부활과 영생의 권능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몸의 죽음이, 저주와 재앙이 끝이 아니다. 이 시대 우리의 죄도 당시 선민들의 죄에 못지않을 것이다. 창조주를 사랑하며 섬기는 것보다 피조된 세상과 육체에 더 마음을 쏟으며 죄와 사망의 길을 따르지 않는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남을 정죄하며 신의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는가? 죄와 사망의 저주에 빠진 세상은 여전히 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다. 주 앞에 있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부르신다. 내가 저주를 받고 너를 구속하였으니 믿음을, 네 마음을 내게 달라, 내 몸을 입고 하늘의 아버지께 함께 오르자 하신다. 그것이 복음이다. 구원이며 영생이다. 언제 어디서나 그 사실을 잊지 않으며 자신의 현실로 여기는 자가 구원을 이루는 성도가 아닐까? 오늘도 우리를 구속하시는 은혜의 말씀을, 십자가의 주님을 놓치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죄와 사망의 땅과 육신에 갇힌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리스도를 보내 죽음과 부활, 승천의 길을 여시며 영생의 나라로 이끄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땅에서 구원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께 연합하며 하늘의 아버지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의 환란과 고통을 보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생명을 구속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아버지께 마음이 이르기를 원합니다. 남은 육신의 삶도 성령으로 이끄소서. 거룩하신 주권과 뜻이 이 땅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