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복음의 확장...(행8:2-13)
기이한 복음의 확장...(행8:2-13)
스테반 사건 후 박해가 본격화된다. 사울은 스테반의 말에 분노했다.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영광을 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본 자는 죽어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가 이단이라고 확신한 사울은 집집마다 다니며 교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집사들을 뽑으며 조직화, 대형화를 꿈꾸던 예루살렘 교회는 흩어진다. 그러나 복음은 확장된다. 사마리아에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한 이는 사도가 아니었다. 집사 빌립이었다.
박해를 피해 교인들은 흩어졌다. 삶의 근거지를 떠나 나그네가 되었다. 상식을 따르면 그들은 자기 처지를 부끄러워하며 먹고 사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나 빌립은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자기 처지에 낙심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의 복음과 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감사했다. 그의 마음은 세상과 육신에 종속되지 않았다. 성령으로 충만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놀라며 그가 증언한 예수를 믿었다.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곳에서 인기를 누리던 마술사 시몬도 빌립의 세례를 받고 그를 따랐다. 율법주의자 사울은 공회의 명령을 받아 교회를 박해했다. 그러나 오히려 복음은 확장된다. 나중에 그는 회심하고 십자가 복음을 세계에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한다. 기이한 복음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역사였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조직화되고 세력을 얻었다면, 아마 그들도 세상에 취하며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오늘 우리는 오직 복음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가? 세상에서 세력을 얻고 형통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차감 신앙이 아닐까? 복음은 이처럼 고난 속에서 말씀과 성령에 순종하는 자들로 인해 확장된다. 유대교의 울법주의자들처럼 세상과 자신의 영광에 마음을 둔다면 결국 종교인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기뻐하는 것이 신자의 본업이 아닐까?
은혜와 권능의 주 하나님, 만물과 역사의 주를 찬양합니다. 무한한 지혜와 사랑으로 정하시고 섭리로 이끄시며 죄와 죽음의 저주에 갇힌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그 사랑과 지혜, 능력의 완성이며 하늘 구원의 통로입니다. 오늘도 말씀에 의지하며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의 동선에 연합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주님과 함께 하늘의 평강과 기쁨에 이르게 하소서. 육신의 삶으로는 하늘에서 세우신 뜻을 온전히 이루며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