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가 포기한 이유(행13:13)
마가가 포기한 이유(행13:13)
함께 가던 마가는 전도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이유는 기록하지 않았다. 학자들은 여러 해석을 내놓는다. 단순히 험한 여정이나 건강 문제로 돌아갔다면 바울은 2차 전도팀을 짤 때 바나바와 싸우면서까지 그를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3장 본문에서 그 이유를 생각한다.
13장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공격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이방인들은 기뻐하며 복음을 받아들였다. 바울도 할례받은 유대인이며 여호와를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복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음으로 죄의 사함을 받고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그 말에 유대인들은 분노했다. 유대교의 율법과 성전, 제사 의식 등 그들의 종교적 유산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쌓아 올린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와 전통, 자랑스러운 선민의식도 무시한 것이다. 그 복음에 의하면 오래된 유대교의 종교 조직과 제도의 필요성도 없어지게 된다. 오직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선민의 자부심과 공로 등 그들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가장 박해하는 사람은 기존의 유대교 종교인들이었다. 마가도 실제 전도의 현장에서, 유대인으로서 이런 갈등과 혼란을 겪지 않았을까? 그러나 십자가의 주님 앞에서 누구도 민족의식과 전통을 고집할 수는 없다. 물론 그는 선입관과 편견의 혼돈에서 벗어난다.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깨닫고 유대교 종교의 종교심에서 탈출한다. 사도들과 동역하며 후에 세계 선교의 관점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한다. 복음에 대한 장애는 이처럼 율법주의 등 조직화, 세력화 과정을 통해서 자기들만의 강한 종교집단을 이루려는 유혹이 아닐까? 그러나 바울은 세상과 육신에 대해 죽은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영의 눈을 뜨고 천국의 현실감을 얻으라 가르친다. 영생은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통해 부패한 세상과 육신에서 마음이 떠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기뻐하며 의지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과연 오늘 나는 세상을 향한 내 판단과 주체성, 성취 등을 내려놓고 하늘 아버지의 주권과 그 뜻 아래 살고 있는가?
만유의 주 하나님, 만물과 역사가 주의 뜻 아래 지어지고 보존되며 섭리 가운데 온전케 됨을 믿습니다. 여전히 인류는 스스로 선악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지으신 세상을 자기 것처럼 여기고 주의 뜻을 거역합니다. 이미 사망의 저주를 받은 땅에 사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멸망의 길을 깨닫지 못하며 자기만족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 땅에 길과 진리, 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의 문이 열렸으니, 오늘도 육신에 매인 나를 부인하며 구원의 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주의 말씀이 들리게 하소서. 성령으로 이끄소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