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5-38)

되어지는대로 2023. 8. 11. 06:16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25-38)

 

   바울이 설교한다.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을 알고 전심으로 말씀을 전한다. “내가 떠나면 흉악한 이리 떼 같은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 양 떼를 해치려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 제자들을 빼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진리를 왜곡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한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처럼 내가 모범을 보였으니 여러분도 약한 사람들을 도우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환란을 당한다. 그러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가르친다. 믿음은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것일까? 주는 삶이 오히려 최고의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성도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의 사건으로 동일시한다. 주 예수와 함께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해서 살림을 받는 것을 믿는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천국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세상은 기쁨과 만족의, 소원의 대상이 아니다. 스스로 비전과 꿈, 목표도 세우지 않는다.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그런 소명의 삶이 희생과 헌신, 봉사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이 가장 유익하며 복된 삶이다. 바울은 그 비밀을 안다. 좋은 것을 남에게 줄 때 내게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최고의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인 사람은 스스로 선악을, 좋음과 나쁨을 판단하며 주께서 지으신 세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 제대로 사랑할 수도, 집착하거나 제거할 수도 없다. 세상은 주의 것이다. 주께서 생각하시며 사랑하신다. 그 뜻과 사랑을 받아 전할 수밖에 없다. 받은 사랑을 흘려보낼 때 주의 사랑이 흘러들어온다. 그 흐름은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며 하늘을 향해 마음이 열릴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주는 것이 복이 있다. 공중 권세 잡은 사탄과 부패한 세상은, 네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남다른 비전을 품으며 네 가치를 높여라, 마음껏 세상을 즐기며 너만의 성공을 쟁취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은 죄와 사망의 저주에, 혼돈과 어둠에 묶여 있다. 타락한 육체에 마음이 갇혀 있다. 영원한 생명과 기쁨은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있다. 이 땅에 빛으로 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에게 최선의 길을 선택했다. 담대한 믿음과 영생의 소망으로 그 길을 달려간다. 힘을 다해 은혜의 복음을, 주님의 말씀과 십자가 사건이 모든 이에게 최고로 좋은 선물임을 증언한다. 그 소명의 삶이 자기에게도 참된 복임을 고백한다. 과연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땅의 복과 하늘의 복을, 영생의 구원을 맛보고 누리며 사는가? 주는 것이 복이라는 그 말씀에 공감하며 감사하는가?

 

   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 만물과 역사를 선하신 뜻으로 지으시고 주관하시며 구원하시는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완악했던 바울을 돌이켜 사명을 주시고 끝까지 함께하시며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그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을 믿습니다.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사랑과 십자가에 사로잡힌 바울처럼 우리도 그 영광의 길에 동참하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좋은지 깨달으며,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오늘을 채우며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