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엡5:1-14)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엡5:1-14)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의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에게 합당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다. 무엇을 본받는 사람인가?
간교한 뱀은 하나님을 모방하라고 하와를 유혹했다. 스스로 계신 창조주 하나님처럼 너도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네 마음대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선악과를 따먹으며 즐겁게 살라고 꾀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다.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의 명을 어겼다. 죽음의 저주에 걸린 채 기쁨의 동산 에덴에서 추방되었다. 하나님과 끊어진 인류는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권세 아래 살인과 약탈, 음행 등을 자행하며 죽음의 길을 걸었다. 피조물인 주제, 그리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어둠에 갇힌 사람이 하나님의 무엇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까? 사랑받는 자녀라며 아버지의 말씀에 어떻게 응해야 할까? 먼저 스스로 선악을,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판단하는 것부터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좋다고 여기는 것에 ‘예’라고 답하며, 나쁘다고 하시는 것에는 ‘아니요’라며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본받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죄와 죽음에 갇힌 우리를 영생과 진리의 자녀로 세우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저주받은 땅에서 죽게 하셨다. 전적으로 우리의 기쁨을 위해, 에덴의 회복과 영생의 구원을 위해서 하신 일이다. 그처럼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우리 죄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안에 들어갈 때 가능하다.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면 우리도 그 안에서 거룩한 자녀로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있다. 땅의 탐욕과 정욕에 찌든 자아가 죽는 별세의 과정과 함께 성령의 강림과 내주하심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거룩한 언행을 할 수 있다. 성도의 합당한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더러운 생각들, 나는 옳고 내가 선하다고 고집하며 남과 자신의 배를 가르는 악한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가 없다면 하늘 아버지를 본받는 자녀로, 성도로서 살아갈 수 없다. 오늘도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도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늘의 아버지께 닿기를, 그 은혜로 충만하기를 간구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주님이 그러신 것처럼 우리 마음 중심에서 가장 거룩하고 소중한 이름이며, 그 나라와 주권이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 임하며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이 땅 우리 삶의 모든 여정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 삶을 위해 오늘도 일용할 영적인 양식들을 공급하시며, 지혜와 능력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고, 죄를 사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의 생사화복이 오직 아버지께 있습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시며 영생으로 이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