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하나님, 드러내시는 하나님?(잠25:1,2)
숨겨진 하나님, 드러내시는 하나님?(잠25:1,2)
“일을 감추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광이다. 하늘이 높고 땅이 깊은 것처럼 왕의 마음도 살필 수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일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좋으신 분이라며 기뻐한다. 나쁜 일에는 슬퍼하며 좌절한다. 이유를 모를 때 불평하며 원망한다. 감히 비난은 못하고 숨겨진 하나님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옳고 선하시다. 그것이 믿음이 아닐까? 하나님은 일부러 숨는 분이 아니시다. 숨겨지기를 원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사람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어떤 의미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사람과 왕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유일하게 스스로 있는 분이다. 세상의 모든 대상들은 있게 된 존재들이다. 사람은 창조주의 생각과 뜻을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이 피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하나님됨이며 영광이다. 주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태초의 아담처럼 사물의 이름을 바르게 짓고 관계하며 일할 수 있다. 아담은 그렇게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내려받으며 기쁨의 동산 에덴에서 살았다. 그러나 미혹에 걸렸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기로 택했다. 사탄의 말을 믿은 것이다. 주께 등을 돌렸다. 마음이 주를 향하지 않았다. 세상의 대상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두었다.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기준을 세우고 판단한다.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미워한다. 자기가 세운 기준을 따라 세상과 일의 좋음과 나쁨을 판단한다. 자기 기준을 따라 좋은 하나님, 혹은 숨겨진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솔로몬은 왕이 되고 나라의 문제들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았다. 세상에 대해서 자기 생각과 판단을 천 번이나 죽이며 주께 듣는 마음을, 지혜를 구했다. 주는 기뻐하시며 당신을 드러내셨다. 지혜를 주셨다. 왕은 일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지혜롭게 다스렸다. 물론 믿음을 지킬 때까지 그럴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지혜를 깨달을 수 없다. 마음이 육신에 붙어 세상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의 마음도 살필 수 없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숨겨진, 이상한 하나님일 뿐이다. 스스로 판단하는 습성에 취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며 등을 돌린다. 자기 이익의 기준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자신에게 적용하며 세상과 육신에 대해, 자기 생각과 판단에 대해서 죽는 자들은 은혜를 입는다. 청결한 마음을 회복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깨끗해진 마음은 하늘에 오르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그 영원한 사랑과 지혜에 접속할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아닐까? 오늘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그 은혜를 간구한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죄로 말미암아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말을 들으며 죽음의 저주에 매인 땅에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이 땅에 참된 생명의 양식이며 빛으로, 목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오르며 그 영광 아래 참 평강과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살기 원합니다.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며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그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하늘 영광으로 이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