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그 비참한 죽음 앞에서...(막6:14-29)

되어지는대로 2024. 1. 15. 06:16

그 비참한 죽음 앞에서...(6:14-29)

 

   세례 요한이 죽었다. 헤롯 왕이 헤로디아의 뜻을 따라 참수를 명했다. 그가 왕과 헤로디아의 비윤리적 결혼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예수는 왕의 불의나 옥에 갇힌 그에게 관심이 없다. 악한 세상을 개혁하지 않았다. 요한은 의아했다. 제자를 보내 예수께 물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 맞습니까?” 제자들은 스승의 비참한 죽음을 보았다. 그들은 과연 예수를 그들이 고대하던 그리스도로 믿었을까? 의로운 스승이 악인들에게 개죽음을 당했다고 분노하지 않았을까?

 

   감옥에서 요한은 예수의 답을 들었을 것이다. 예수로 인해 맹인이 보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사실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임을 알았을 것이다. 당장 사회정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뜻, 믿음보다 자기를 앞세운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그는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했었다. 그러나 자기 앞의 천국을 놓치고 땅의 일에 마음을 쏟으며 그리스도를 의심한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스테반처럼 믿음으로 천국을 보았다면 그도 하늘의 평강 속에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이 악녀들에 의해 참수되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도 믿음으로 천국을 본다면 그들은 소명을 마치고 천국에서 안식하는 스승을 볼 것이다. 그 죽음은 육체의 죽음일 뿐이다. 육체의 죽음도 귀천이 없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육체를 벗은 다음 그 영혼이 낙원에, 하늘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분노와 원망, 수치심 등으로 좌절했을 것이다. 믿음의 길에서 혹시 실족하지는 않았을까? 마가는 이 사건을 제자들을 파송하신 것과 그들이 돌아와 성과를 보고하는 장면 사이에 넣었다. 그 이유는 성도가 세상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할 일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먼저 하나님과 천국으로 그 마음이 채워져야 한다.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기뻐야 한다. 그래야 사사로이 판단하며 말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의 악한 현실에 분노하고 원망하며 마음을 빼앗긴다면 그의 믿음도 끊임없이 흔들릴 것이다. 온전한 믿음은 주 하나님의 옳으심과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을, 그 주권을 먼저 바라보라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세상이 아니라 주께 더 밀착하고 사랑하며 기뻐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과연 나는 십자가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뒤를 따르는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자로서,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사는가? 받은 소명을 따라 남은 날들을 믿음으로 채우며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가?

 

   만유의 주 하나님. 한없는 사랑과 공의, 지혜와 권능으로 죄와 저주의 땅에서 구원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주권과 은혜로 부족하고 무능한 우리를 이끌어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나라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 은혜의 말씀과 주님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 우리 마음도 하늘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오직 믿음과 소망으로 육의 시험을 이기며 실족하지 않게 하소서. 어느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놓치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신 뜻을 이루게 하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