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왕이 되려 한 아들(왕상1:1-10))
스스로 왕이 되려 한 아들(왕상1:1-10))
“학깃의 아들 아도니아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그가 요압과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아도니아는 왕이 되고 싶다. 군대 장관과 대제사장도 포섭했다.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실패한다. 본문의 교훈을 생각한다.
압살롬에 이어 다윗의 넷째 아들인 아도니아도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 잘못 키운 아들이다. 실패한 인생이다. 단서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는 구절이다. 아버지 다윗은 잘난 아들을 한 번도 징계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도니아는 오만하다. 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왕이 되고 싶다. 서열도 가장 높다. 노쇠한 아버지를 대신해 왕위에 오르기로 정했다. 군대 장관과 제사장의 협조도 얻었다. 그의 실수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 곧 주의 말씀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미 하나님은 다윗의 열 번째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선지자 나단은 그 말씀을 늘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도니아의 소식을 알자 곧 밧세바에게 전한다. 다윗에게 가서 전에 했던 맹세를 확인한다. 다윗은 즉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다. 그는 늙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항상 의식한다. 아름다운 처녀 아비삭을 신하들이 들여보내 시중들게 했다. 그러나 동침하지 않았다. 자신의 죄적 본성을 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 마음을 두며 만족하려 하지 않는다. 음욕과 탐욕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도니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에 거룩히 여기지 않았다. 그는 몰락한다. 스스로 판단하며 끝없이 자기를 높이려는 인생의 결말이 아닐까?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고 죄와 저주에 갇힌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추앙받기를 소원하며 스스로 높아지려는 욕망의 인생들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오늘 우리도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를 높이려 애쓰지 않는가? 여전히 하나님을 잊고 세상의 영광을 갈망한다면 저주에 갇힌 증거가 아닐까? 보이는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있게 된 것이다. 심판과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며 재료일 뿐이다. 오늘도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며 스스로 높아지려는 죄에서 벗어나기를,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세상에 대해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살아서 하늘의 참 평강과 기쁨에 닿을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죄와 저주에 매인 인생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시는 자녀로, 영생의 구원으로 이끄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저주의 길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주권과 뜻을 수용하는 자녀로 살기 원합니다. 부패한 마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며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이루며 찬양하게 하소서,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남은 날들을 채우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