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여로보암과 아들에 관한 하늘의 관점(왕상14:1-20)

되어지는대로 2024. 5. 7. 16:59

여로보암과 아들에 관한 하늘의 관점(왕상14:1-20)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다. 돌이키지 않았다. 아들이 병들었다. 다급한 여로보암 왕은 선지자를 기억해냈다. 오래전 그가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아히야다. 아내를 위장해서 보냈다. 그는 왕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왕에게 재앙이 닥치고 아들도 죽을 것이다. 그 가문은 끊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하나님을 향해 선한 뜻이 있으니 그의 죽음은 주께서 데려가신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서 아들을 서둘러 떼어놓으신 것이다. 왕의 실패를 생각한다.

 

   여로보암도 이스라엘 선민이다. 출애굽의 역사도 하나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믿고 따르지 않았다. 자기가 더 좋아하는 것, 기쁨과 만족을 준다고 믿는 세상의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왕의 지위가 더 소중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산당과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만든 우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다. 민심을 얻으려고 마음대로 제사장들을 세우며 축복의 제사를 하게 했다. 절기를 만들어 즐기게 했다. 육신의 성공과 쾌락에 취하게 했다. 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말씀을 잊게 했다. 이런 왕을 하나님은 쓰레기처럼 여기신다. 진노하시며 재앙을 선포하신다. 땅에서 쓸어버리신다.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마음에 두고 좋아하는 것은 주 앞에서 죄이며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마음으로는 돈과 명성 등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면서 마치 주를 사랑하는 것처럼 스스로 위장하며 예배하지 않는가? 과연 주 하나님이 마음에서 가장 소중하며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대상인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받은 모든 것을 버릴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며 가장 귀하게 여기는가?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위가, 왕권이 가장 소중했다. 그는 신앙을 위장하며 선민들의 마음까지 도둑질했다. 그러나 아들은 하나님을 향한 선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일찍 죽은 그는 제대로 장사된다. 일찍 죽는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복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관점은 이처럼 세상의 관점과 다르다. 믿음은 세상에서 시선을 돌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나라의 영적 현실을 바라보며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마음의 행위이다. 여로보암은 실패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아들은 긍휼을 입지 않았는가? 이런 재앙과 축복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계속 반복된다. 구원의 믿음에 이르는 선민들의 예정하신 수가 차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주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영적 위장을 벗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길에 오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마음이 닿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참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그 영광을 찬양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심판과 구원의 주 하나님, 믿음과 은혜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께 드려야 할 마음을 세상과 육신에 빼앗기며 재앙을 택하는 악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경고의 말씀을 받으며 생명과 진리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하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거를 붙잡고 오직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 십자가 복음이 영생과 진리에 이르는 길임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재앙이 아니라 구원이 주의 뜻인 것을 알고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세상과 육신의 모든 요구를 이기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