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아합의 시대에(왕상16:29-34)
타락한 아합의 시대에(왕상16:29-34)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왕이 되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이전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했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는 죄를 가볍게 여겼다. 시돈의 이세벨과 결혼하며 우상들을 섬겼다. 본문에는 뜬금없이 여리고 성을 재건한 사건이 나온다. 이유를 생각한다.
아합의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 성벽을 재건했다. 그가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을 잃었고 문을 만들 때 막내아들을 잃었다. 이 일이 여호수아 시대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기록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에 들어온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수6;26). 당시 그들은 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권능을 경험했다. 가나안에 정착하고 나라를 건설했다. 그 후 누구도 그 성을 재건하려 하지 않았다. 저주의 예언을 기억하며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합의 시대에 그들은 그 말씀을 잊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만큼 타락한 시대였다. 아합은 바알을 섬기는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했다. 시돈과 동맹을 맺으며 그들의 세속 문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인을 따라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의 숭배를 장려했다. 온 나라가 탐심과 정욕 등 육신의 복과 쾌락에 취했다. 전설 속의 견고한 여리고 성벽까지 재건하며 마음대로 즐기며 높아지는 일에 열중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선악 판단하기를 좋아하며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악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다. 스스로 있는 분에 의해서 땅에 한시적으로 있게 된 존재들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았다. 택하신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심판과 죽음의 저주에서 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도 세상과 육신의 복에 취해 혼합주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 그 두렵고 놀라운 존재감과 무게의 이름을 너무 가볍게 부르지 않는가? 아합의 시대처럼 선민들이 세속 문화에 미혹되며 죄와 타락의 길로 빗나가지 않는가? 오늘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아들 예수를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분이 스스로 계신 여호와이시며 전능하신 주이심을 놓치지 않기를, 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를 의식하며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소원한다.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주의 말씀을 거부하는 삶이 죄임을 가르치며 돌이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대에도 변함없는 구원의 언약과 그 성취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연쇄 과정이 신자들을 영생과 진리의 나라로 이끌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임하며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높고 아름다운 그 이름을 더욱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찬양하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우리의 길과 진리,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