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는 믿는가(왕상17;1-16)

되어지는대로 2024. 5. 15. 06:08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는 믿는가(왕상17;1-16)

 

   타락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다.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 선포하셨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앞으로 몇 년 동안 이슬도 비도 없을 것이다.” 기근이 닥쳤다. 비를 주실 때까지 삼 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모두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엘리야도 기근 속에 살지만 염려하지 않았다. 주 하나님을 믿는 증거가 아닐까? 엘리야의 삶을 주께서 책임지셨다. 선민이 염려하며 걱정한다면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계시한 민족이다.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세월이 흐르고 그 일들은 전설이 된다. 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자기 삶의 현실로 여기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그 이름을 부르며 육신의 필요와 소원을 표현할 뿐이다. 신의 형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정성을 다해 자신의 주관적 믿음을 표현하며 소원 성취를 비는 것이 종교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신의 객관적 존재, 그 있음과 없음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 소원을 향한 믿음과 열심, 희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합의 시대에 물질의 풍요와 번영을 꿈꾸며 소원하는 풍조가 온 이스라엘을 덮었다. 바알과 아세라 신앙이 유행했다. 그들은 선민이다.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자신의 현실로 인식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복이, 잘 먹고 사는 일이 중요했다. 거룩한 삶, 영적인 복은 먼 미래의 일이며, 말씀도 실행이 어려운 비현실적 지침으로 여길 뿐이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기근의 재앙을 허락하셨다. 바알 신앙이 헛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보고 계시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선지자를 통해 살리는 권능도 드러내셨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정말 믿고 있을까? 그렇게 믿는다면 그 증거가 삶이 현장에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생활의 염려와 걱정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가? 세상에는 신념의 마력, 긍정의 힘,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희망과 위로의 말들이 넘쳐난다. 피조물인 사람의 말이며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언어체계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어체계는 다르다. 창조주 하나님은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지 말라 하셨다. 오직 믿음으로 잠잠히 주께 맡기고 주와 동행하면 모든 일에서 선을 이루실 것이라 하셨다. 인자로 오신 독생자 예수도,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셨다.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악한 시대에 엘리야를 살리시며 개입하시는 주의 사랑과 권능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 삶에서도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우리 위에 살아계시며 보고 계시는 주 하나님, 사람은 모르나 주는 모든 상황을 아시며 무한한 사랑과 지혜와 권능으로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인생의 완악함을 참으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실패는 반복되지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내 뒤를 따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그 길에 동참할 때 우리 마음도 하늘에 오르며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이를 것입니다. 오늘도 그 소망으로 세상의 소리가 아닌 천국의 언어를 듣게 하소서. 성령을 따르며 그 나라와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