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벧전1:22-2:9)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벧전1:22-2:9)
“그러므로 악독과 기만과 외식,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위해 사모할 젖은 무엇일까? 단지 성경의 말씀을 듣는 것일까?
앞 단락은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곧 사라지나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이었다. 연약한 인생과 그 영광은 곧 사라지며, 구원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얻는다는 것이다. 즉 구원은 주의 말씀인 복음을 먹으며 마음에 채울 때 얻는다. 그러므로 이전에 하던 악독과 기만, 외식, 시기와 비방의 말을 버리라 한다. 따라서 신자가 사모할 순전한 젖은 그런 말과 정반대의 말을 의미한다. 그것은 썩어질 육체의 언어가 아니다. 하나님의 언어와 가치 체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성장은 하나님의 언어를 내 것으로 받으며 그 의미 체계를 따라 생각하고 말할 때 가능하다. 태초의 인류에게 뱀이 넣어준 말, 곧 네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세상과 네 인생의 주체가 되라는 사탄의 언어체계를 유지한다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순전한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다. 육신은 악독과 기만, 시기와 비방의 말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재물과 권력, 건강과 장수 등이 최고의 성공이며 좋은 인생이라는 세상의 가치와 언어체계로는 하늘의 가치와 언어체계를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이 가난하며 애통하는 자가 복되다는 예수의 산상 수훈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연쇄 과정이 복음인 사실도 체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자는 먼저 죄와 타락으로 저주받은 땅과 육신의 언어체계를 버려야 한다. 하늘의 언어체계를 받아야 한다. 그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 거듭나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스템을 포맷하고 새 시스템으로 교체하듯, 부패한 마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하늘 아버지께 연결되며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거듭난 그는 순전한 말, 말다운 말을 사모하고 마음에 채우며 입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하늘 아버지를 사랑하는 예수님처럼 산 돌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영적인 제사를 할 것이다. 그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증언하며 찬양할 것이다. 그렇게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날에 교회로서 최초의 대중 설교를 순전한 말로 선포하지 않았는가? 그날 이후 제자들의 언행이 완전히 바뀌지 않았는가? 과연 오늘 우리는 그렇게 거룩한 말하기를 사모하며 실제 입으로 말하고 있는가? 부패한 세대의 풍조, 빌런들의 유행어 등을 좋아하며 따라 하지 않는가? 거듭난 신자라면 예수를 통해 얻은 새 언어체계, 거짓이 없는 순전한 말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며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난 갓난어른이 되어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생각과 뜻이 담긴 새 언어를 내 입으로도 말할 수 있기를 오늘도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생명과 진리와 사랑의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 같이 하늘의 거룩한 언어를 기뻐하며 구원의 이르도록 자라기 원합니다. 타락한 세상과 부패한 육신의 언어에 젖은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은혜로 다시 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그 은혜의 언어를, 영생과 진리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주님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에 잠기게 하소서. 성령을 베푸소서. 감사와 기쁨과 기도로 허락하신 모든 것이 합력하며 선을 이루게 하소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