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왜 죽었는가(왕하4:18-37)
내 아들이 왜 죽었는가(왕하4:18-37)
아들이 죽었다. 수넴 여인은 아들을 엘리사의 방으로 옮겼다. 그의 침대에 누이고 엘리사를 찾아간다, 갈멜산의 그에게 가서 말한다. “왜 원하지도 않은 아들을 주고 이제는 또 빼앗아갑니까?” 그녀는 엘리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엘리사는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간다. 자기 침대에 있는 아들을 본다. 그 시신에 자기 몸을 포갠다. 그가 아들 위에 눕자 아들이 살아났다. 여인은 아들을 되찾았다. 이 사건의 영적 의미를 생각한다.
이 사건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 아닐까? 죽은 아들을 바라보는 여인의 마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까? 미칠 듯한 고통과 아들을 살리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는 엘리사를 찾았다. 절대 놓지 않을 결심으로 그를 붙잡았다. 엘리사는 그녀를 따라간다. 아들의 시신에 자기 몸을 포갠다. 부정한 시신에, 죽음에 자기를 얻었다. 그로 말미암아 죽은 아들이 살아났다. 사랑의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저주받은 땅에 인자의 몸으로 보내셨다. 죽음에 던져 놓으셨다.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저주받은 땅에 영생의 자녀로 택하신 선민들이 있다. 그들이 십자가의 예수께 몸을 포개기를 원하신다.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얹으며 연합하는 자들은 그 아들이 살아나는 것을 볼 것이다. 자신도 그와 함께 별세와 부활의 축복으로 거듭난 삶을, 영생과 진리의 천국을 살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주받은 땅과 죽음을 선고받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이다. 주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격적 존재로 지으신 사람, 저주에 빠진 영혼을 버리지 않으셨다. 선악과를 취해 스스로 세상의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가 주인이라고 믿는 피조물들을 죽음에서 구원하기로 정하셨다. 아들을 죽음의 십자가에 올려놓고 모두 와서 보라 하신다. 그 몸에 저주에 갇힌 네 몸도 얹으라 하신다. 함께 살라 하신다. 그러므로 죽음의 저주에서 구원을 얻는 길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예수께 몸을 포개는 것이다. 그 죽음에 연합하는 십자가, 곧 자기 부인의 길이다.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아들과 함께 우리를 살리시며 천국 자녀의 자리로 이끄실 것이다. 이제 수넴 여인은 살아난 아들보다도 아들을 비롯해 모든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과 기쁨이 깊어졌을 것이다.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본다고 고백한 욥처럼 죽음의 환란을 겪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새롭게 고백했을 것이다. 오늘도 죽음을 죽음으로 이기게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또한 그의 아버지이시며 우리 아버지로 불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무한한 사랑과 은혜로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아담의 죄를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이기게 하시며 에덴의 자리로 돌이키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부활과 승천과 우편의 자리에 올라 아버지와 천국의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거듭난 자의 감사와 기쁨으로 소명을 이루게 하소서. 맡기신 모든 이에게 은혜와 축복을 나누며 선하신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