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며 관대한 하나님의 사람(왕하6:15-23)
담대하며 관대한 하나님의 사람(왕하6:15-23)
아람이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실패를 반복한다. 알아보니 그 땅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서 그들의 계획을 알아낸다고 한다.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기로 한다. 군대를 보냈다. 엘리사의 종이 적군을 보고 두려워한다. 엘리사가 기도한다. 종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군대가 지키는 것을 본다. 또 기도하며 적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 그들을 사마리아 성으로 이끌어 포로가 되게 했다. 왕에게 그들을 대접해 돌려보내라 한다. 그들은 놀람과 두려움 속에 돌아갔다. 이 사건의 의미는 어제 본문 물에 뜬 도끼 사건과 같지 않을까?
육체의 오감으로 아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영의 세계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 현실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엘리사는 그 영의 세계에 연결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몸으로 그 뜻을 땅에서 이루고 있다. 소명을 따르며 선지자로 살아간다. 그가 기도하므로 종의 눈이 영적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은혜를 입고 믿음을 얻었다. 반대로 적군은 눈이 어두워져 육신의 현실조차 보지 못했다. 그들은 엘리사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의 포로가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한동안 그들은 다시 이스라엘을 침략할 생각을 품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다. 그러나 실제 마음은 하나님과 멀다. 풍요와 다산의 우상 바알과 가깝다. 마음을 다해 주를 사랑하며 순종하지 않았다.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죄와 타락의 길을 사랑하며 집착했다. 그러나 주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당신의 살아계심과 선하심, 절대적인 주권을 드러내신다.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며 구원으로 이끄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징계와 심판이 있다. 선민이지만 합당한 회개의 삶이 따르지 않는 그들은 비참한 결과를 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은 마음이 세상, 곧 죽음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수면 위에 떠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도 여전히 돈과 권력, 이념 등 세상의 영광에 눈이 멀고 사로잡혀 살지 않는가? 말씀으로 계시하신 영의 세계를,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과연 나는 얼마나 의식하며 사는가? 구약의 선지자들, 신약 시대 사도와 성도들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거짓 선생들의 미혹과 시험도 이어진다. 그러나 참된 생명과 진리의 가르침에 우리의 눈과 귀가 열리는 은혜가 있기를, 부디 그 부르심에 늦지 않기를 소원하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자로 오시고 십자가의 길로 이끄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며 오늘도 기도한다.
만유의 주 하나님, 한없는 사랑과 지혜와 권능으로 역사를 이끄시며 구원과 심판의 뜻을 이루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주의 형상을 따라 영적 존재로 지어졌으나 육체로 전락한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며 영의 눈을 열어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성령을 허락하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우리 가운데 성취되게 하소서. 은혜로 허락하신 이 구원의 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