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자들이 살길을 보았다(왕하7:1-10)
분리된 자들이 살길을 보았다(왕하7:1-10)
나병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성문 밖에 있었다. 굶주렸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아람의 진영으로 갔다. 그날 그곳에 기적이 있었다. 아람 군대가 갑자기 대군의 진격해 오는 소리를 들었다. 이스라엘의 요청으로 헷과 애굽의 원군이 기습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두려움애 사로잡힌 그들은 황급히 철수했다. 양식과 물자를 두고 떠났다. 쫓겨난 자들은 그곳에서 살길을 발견했다. 배불리 먹고 성에 돌아가 알렸다. 구원의 소식을 처음 알린 사람은 엘리사나 그의 제자가 아니라 성에서 쫓겨난 자들이었다. 이 시건의 영적인 의미를 생각한다.
성안 사람들은 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살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쫓겨난 거지들에게는 그 길이 보였다. 성을 떠난 그들은 양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성안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렸다.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전해진 것도 그렇지 않은가? 로마 제국의 세상은 예수를 십자가로 죽였다. 복음을 거부하고 박해했다. 그들의 세상, 곧 그들의 성에서 신자들을 추방했다. 신자들은 쫓겨나 유리하며 방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유무상통하며 서로 사랑으로 돌보았다. 종의 신분으로 정직하게 살아냈다. 그들이 전한 복음으로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된다. 구원의 길로 인도받았다. 생명과 진리, 사랑, 용서, 희생, 헌신 등의 기쁨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제국과 결합하며 풍요와 번영 등을 맛보고 빗나가는 신앙으로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잊은 기독교 종교는 부패하고 쇠퇴한다. 그러나 참된 믿음과 구원의 길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사건은 구원, 곧 생명의 길과 양식은 성, 곧 세상의 울타리 밖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죄와 타락의 저주받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제자들도 부패한 세상과 육신에 속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십자가는 그 경계, 곧 성문에 높이 세워져 있다. 그 십자가가 별세와 부활의 하늘길로 나아가는 관문이 아닐까? 말씀대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한 죽음과 부활의 길을 따르는 삶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다. 세상과 육신에 매여 집착하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고 거듭나며 하늘 아버지의 소명을 따르는 삶이 구원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며 영생과 진리의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죽음의 성에서 건져 영생과 진리의 나라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예수의 말씀과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길로 이끄시며 하늘 아버지를 대면하는 자리에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과 천국의 경계에 세워진 그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감사함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마음이 이르기 원합니다. 생명과 진리의 길을 보게 하소서, 성령을 허락하소서. 담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별세와 부활의 길에 오르며 그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