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야댜와 맛단 제사장의 약속(왕하11:13-21)
여호야댜와 맛단 제사장의 약속(왕하11:13-21)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기 요아스를 성전에서 키운다. 성전은 왕궁 옆에 있다. 어떻게 아달랴의 사람들이 모를 수 있었을까? 성전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알을 숭배하는 그들에게 성전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여호야다는 몰래 왕자를 키우며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아달랴를 죽이고 7세의 요아스를 왕위에 올린다. 바알의 신전을 부수고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한다. 하나님의 제사장 여호야다와 바알의 제사장 맛단의 약속을 생각한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성전을 지키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의 연결을 주선한다, 하나님을 유일한 주로 섬기게 한다. 바알의 제사장 맛단은 바알 신전을 지키며 땅의 풍요와 번영을 약속한다. 백성들에게 바알을 섬기라 한다. 바알은 땅에서 만들어진 우상이다. 말할 수도 반응할 수도 없다. 물론 사탄이 우상을 통해 역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섭리적 소모품의 역할이 끝나면 하나님의 교정적 주권에 의해서 파괴될 것이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유다에서 다윗의 후손을 죽이며 권력을 잡았다. 온 나라가 바알을 섬기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씨를 끊어지지 않게 하셨다.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위해 불신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그 씨를 지키셨다. 새 언약의 그리스도를 보내 영생과 진리의 구원을 얻을 하늘의 자녀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태초의 죄로 인한 죽음의 저주로부터 탈출하는 영생의 구원이다. 바알의 제사장 맛단이 약속하는 것은 당장 보이는 풍요와 다산, 번영 등 현세의 복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합의하고 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창조주 앞에서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죄인이며 세상은 저주를 받고 멸망의 심판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온전한 믿음으로 주께 돌아오는 사람의 수가 찰 때까지 심판이 미루어진 것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주시려는 진짜 복은 타락한 인류가 원하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과 천국을 지금 땅에서 마음에 받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들은 모른다. 육체의 오감으로 파악하는 세상 좋음이, 재물과 건강의 복이 최고인 줄 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천국을 본 바울은 세상이 좋다고 인정하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비유했다. 당장이라도 육체를 벗고 세상을 떠나 주님이 계신 하늘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하늘에 속한 자녀의 마음이 아닌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믿음이며 구원이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참된 축복을 어떻게 이해하며 구하는가? 여전히 하나님과 천국을 모르는 사람들, 하늘의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들처럼 땅의 것을 염려하며 중언부언하지 않는가?
만유의 주 하나님, 유일하고 영원하며 절대적 주권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그 주권 아래 세워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세상은 주의 뜻을 위한 도구며 재료입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시는 주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에 마음을 쏟는 것이 죄임을 배웁니다. 언약대로 오신 예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으로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을 통해 죽음의 저주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기 원합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의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며 소망합니다. 우리 마음도 하늘에 이르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쁨, 쉬지 않는 기도, 범사의 감사로 오늘을 채우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