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요아스의 슬픈 역사(왕하12:9-21)

되어지는대로 2024. 7. 18. 06:20

요아스의 슬픈 역사(왕하12:9-21)

 

   성전을 보수하는 기록이 이어진다. 그러나 아람의 침략에 요아스 왕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굴복하며 성전의 보물까지 모두 바친다. 왕하 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람의 공격에서 구원하셨다. 요아스가 다스리는 유다는 구원하지 않으셨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요아스의 기록은 역대하에 자세히 나온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 그는 우상을 섬겼다. 옳은 말을 하는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였다. 결국 암살당한다. 성전에서 시작한 그 인생을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며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러나 그곳에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있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된 선지자들로 인해 이스라엘은 구원을 경험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다윗의 길을 따르며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에는 왜 그런 은혜의 통로가 없었을까? 제사장 여호야다로는 부족했을까? 성전에서 자란 요아스도 하나님께 마음이 닿지 않았다. 왕궁에 살게 된 그는 세상의 좋음, 권력의 맛에 빠진 것이 아닐까? 성전을 보수는 하지만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세상과 육신을 기뻐했다.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었다. 외적의 침입 앞에서도 세상의 방식을 따른다. 굴복하며 조공을 바쳤다. 믿음이 없음을 드러냈다. 아버지와도 같은 여호야다의 아들 제사장이 옳은 말을 하자 그를 죽였다. 죄와 타락에 찌든 인간의 악한 본색이 드러났다. 결국 저주받은 땅에 속한 자로서 반역을 당하고 죽는다. 그 인생은 선민으로 태어나고 자랐으나 주 하나님을 떠난 결과를 보여주는 것 같다. 태초에 범죄한 아담 이후 원죄의 경향은 누구나 타고난다. 타락한 세상에서 육체로 살며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영생의 구원이 계시되었다. 주신 말씀과 성전을 생활화하는 삶이다. 신약 시대에 새 언약의 성전과 상번제의 완성을 예수께서 당신의 몸으로 온전히 이루어 주셨다, 마음이 그 십자가에 연합하며 세상에 대한 자기 부인, 곧 별세와 부활과 승천의 길을 따르는 삶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연결되며 구원을 이루는 길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과의 연결을 원하는가? 여전히 세상의 형통과 육신의 기쁨을 소원하는가? 그것은 주께서 선언하신 육의 인생, 곧 심판과 멸망의 길이 아닌가?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께 연합하며 우리 마음도 하늘의 평강과 기쁨에 접속하기를, 항상 그 연결과 흐름이 이어지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되기를 소원한다.

 

   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이끄시는 주께 감사합니다. 구원의 길은 우리 앞에,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십자가의 길에서 세상에 대해, 곧 세상의 것으로 기쁨과 만족을 구하며 집착하는 마음이 죽고 하늘에 계신 유리 아버지께 대해 살기 원합니다.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살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오르신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를 이끄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삶의 현장에서도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