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진심의 간절한 기도 그러나 부끄러운 기도의 결과(왕하20:1-11)

되어지는대로 2024. 8. 7. 05:56

진심의 간절한 기도 그러나 부끄러운 기도의 결과(왕하20:1-11)

 

    묵상할 내용이 많은 본문이다.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 이 병으로 네가 죽을 것이니 집을 정리하라는 주의 말씀을 받았다. 히스기야는 면벽하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의 기도에 하나님은 뜻을 바꾸셨다.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셨다. 그의 기도는 진심이며 간절했다. 그러나 옳은 기도일까? 하나님은 왜 뜻을 바꾸셨을까? 그의 아들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된다. 악한 왕이었다. 생명을 연장받지 않았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왕이다. 예언대로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히스기야는 29년을 왕으로 살다가 죽었다. 병이 든 시점은 재위 14년이다. 그 후에 15년을 더 살았기 때문이다. 그 해에 앗수르의 1차 침공이 있었다. 히스기야는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조공을 바쳤다. 또한 기적의 은혜로 병이 낫고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물을 자랑한 해이기도 하다. 그때 자랑할 보물이 있었다는 것은 그 이후 앗수르의 침략이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치유를 경험하고 바벨론 사신들을 맞은 후에 앗수르의 침략과 수모를 당한 것이다. 치유 기도와 병이 나은 후 오히려 그는 책망과 유다 멸망의 예언까지 들었다. 더구나 그가 치유 후에 얻은 아들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허물었던 산당을 다시 짓고 여호와의 성전에 일월신상을 세웠다. 우상에게 아들을 바치기까지 했다.

    본래 하나님은 산당을 없앤 히스기야를 일찍 하늘로 데려가려 하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셨다. 그렇다고 그의 기도가 유다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을까? 그럴 리 없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대응하시며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아마 그는 자기가 살아야 나라가 잘 유지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선행을 들추며 왕인 자기가 나라를 위해 더 일하며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주체성과 능력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부족한 것을 알고 계셨다. 또한 후손들에게 믿음과 기도에 관해 보여주려 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생명을 연장하며 그의 부족한 믿음과 앗수르의 공격 앞에서 그가 겪을 기도의 변화를 드러내게 하신 것이 아닐까? 죽든지 혹은 15년을 더 살든지 그런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그 나라와 그 뜻이 땅에서 성취되며 증거되어야 했다. 사실 히스기야 본인에게는 병으로 일찍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어차피 유다의 미래와 다윗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아래 이루어질 일이 아닌가? 다윗의 후손으로 독생자 예수께서 땅에 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연쇄 과정을 이루는 것도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일이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창조주며 아버지로 믿는 선민이 예언을 바꿀 정도로 육신의 삶을 연장하며 자기가 세상을 책임지겠다고 부르짖는 것이 과연 옳은 기도일까? 여전히 하나님의 판단과 뜻보다 자기 판단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셨다. 자기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와 뜻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오늘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만유의 주 하나님, 한없는 지혜와 사랑으로 주관하시며 약속하신 구원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스스로 판단하며 자기를 주장하는 삶이 무능한 것을 배웁니다. 혹자는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와 열정을 배우라 하지만 그 결과는 고통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끝까지 순종하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봅니다. 그 별세와 부활의 길에서 우리도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아버지의 주권과 능력 아래 있습니다. 주님처럼 그 뜻을 분별하며 순종하게 하소서. 버림받았으나 사실은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