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주기도 생활화」
6.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주기도 생활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마다 사실 마음이 좀 불편하다. 용서의 순서 때문이다. 내가 먼저 내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야만 나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까? 내가 용서한 만큼 하나님도 나를 용서하신다는 뜻일까?
예수께서 이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후에 제자들을 통해서 성도가 될 사람들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성도라면 어떻게 살지를 가르치신 것이 아닐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따르는 성도는 이미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한 사람이다. 그는 예수를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했다. 죄를 대속하는 어린 양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는다. 큰 은혜를 입었다.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 주님과 함께 거듭나며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여긴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성도가 드리는 기도가 주기도이다. 죄와 죽음의 저주에 찌들어 살던 자기가 오직 은혜로 영생과 진리의 구원을 받은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그 마음은 세상을 탈출해 하늘로 향한다. 하늘 아버지의 평강과 기쁨에 닿는다. 그 마음은 평화롭다. 다시 저주받은 땅과 부패한 육신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더는 미련도 집착도 품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더 이상 손해나 피해 의식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예수께서, 또한 스테반 집사가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한 것처럼 그도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용서할 것이다. 아들을 죽인 자를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처럼 원수까지도 용서할 것이다. 이처럼 하늘 아버지께 부름을 받고 마음이 하늘에 이른 자녀라면 용서가 마땅함을 가르치시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저주받은 땅에서 육체로 살아간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가득한 바다와도 같은 세상에 있다. 시험과 도전의 물결은 끊임없이 몰아친다. 한순간이라도 십자가의 주님을 놓치고 다시 세상으로,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면 그는 죄에 사로잡힐 것이다. 죄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므로 즉시 용서를 구한다. 탐심과 정욕이 일어나도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기억한다면 그 마음은 즉시 죄를 깨닫고 하늘의 아버지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천국 자녀들이 하늘의 아버지께 잘못을 저지를 것을 염두에 두고 가르치신 기도다. 제자들의 일상의 현장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잘못들을 전제하시며, 그때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다시 돌이키도록 가르치신 기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하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께 짓는 죄는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날까? 삶의 현장에서 내 마음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세상에 있는 어떤 대상의 존재감이 하늘 아버지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 일어난다. 창조주 하나님은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신다. 항상 보고 계시며 한없는 사랑과 지혜로 판단하며 주관하신다. 그 하나님을 놓치고 다른 대상에 마음이 사로잡힌다면, 이를테면 다른 대상의 좋음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그는 우상을 두고 섬기는 것이다.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떠나 아담의 죄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미움과 증오도 마찬가지이다. 분노와 원망이 가득한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사로잡힌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이 유일한 있음이며 좋음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세상을 향해 빗나감의 죄가 발생한 것이다.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다른 대상이 거룩히 여김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는 이렇듯 마음에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가장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그에게는 하나님만이 참 보물이며 기쁨과 만족의 원천이시다. 그 증거가 세상에서 손해 의식과 피해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 사실을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서 손해와 피해를 봅니다. 손해와 피해 의식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마음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의 참 보물이시고 참 소유이신 것을 실감하고 있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의 누구도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빼앗을 수 없으며 손해 의식을 일으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소서. 무엇보다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생활의 현장 어디에서나 항상 거룩히 여겨지게 하소서. 하늘 아버지의 살아계심의 존재감과 좋으심에 관한 소망이 날로 깊고 무겁고 커지게 하소서.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도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내게 잘못하는 사람들을 조건 없이 용서하게 하소서. 그들이 내게 빼앗는 것이 내게는 참 소유도 아니고 참 보물도 아닌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도 억울함과 분노를, 손해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버지께서 우리의 참 보물이시며 기쁨이시며 기업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보며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올리기 원합니다.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