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주기도 생활화」
7.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주기도 생활화」
시험에 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형성된 영적 의식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은 그분의 십자가에 나를 얹으며 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장사 되심에 연합하며 함께 부활과 승천, 보좌 우편에까지 따라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마음이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세상 탈출과 천국 진입을 생활화하며 하늘 아버지께 닿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세 가지 속성에 마음이 반응하게 된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있음과 좋으심과 그 주체성이다. 그 증거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있음의 존재감과 하나님 좋음에 대한 열망과 세상을 향한 그 주체성을 실감하며 놓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시험에 드는 것은 이렇게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영적 의식 체계가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믿음에 이상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세상 있음의 존재감이 하나님 있음의 존재감보다 커지고 세상 좋음이 하나님 좋음보다 더 실감되며, 사람의 주체성이 하나님의 주체성보다 더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선민이 시험에 드는 상황을 성경은 계속 반복하며 지적한다. 예를 들어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목이 마를 때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했다. 하나님의 존재감과 좋음보다 세상과 육체의 존재감과 좋음을 더 크고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소개하셨다. 세상의 모든 대상은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있게 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출애굽의 기적을 통해 강대국 애굽의 바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그 존재감을 세상과 육체의 고통 앞에서 그들은 순식간에 잊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세상을 사는 동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감과 좋음과 주권의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며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야 땅에 있는 그들이 하늘의 평강과 기쁨에 이르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을 땅에서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의 오감이 너무 강력하기에 믿음으로 만나는 주 하나님을 실감하며 따를 수 없다.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실감이 육체의 오감에 뭉개진 것이다. 왜 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실감이 육체의 오감에 의해 그리 쉽게 밀려나며 사라져버릴까? 왜 선민이 시험에 들게 될까?
마음의 시선이 하늘을 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과 육체를 바라보며 그 좋음으로 마음을 채우며 만족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선민들도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보고 있을 때는 당연히 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 당신을 기뻐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일어난 그 기적의 현상을 즐거워한 것이다. 그 현상이 사라지면 그들의 기쁨은 사라진다. 어려움이 닥치면 곧 슬픔과 괴로움,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마음이 세상의 대상을 향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에게 기쁨과 만족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그 좋음을 추구하며 소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그 이름을 부르는 선민이 세상에서 자기가 스스로 좋다고 판단하는 것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속 소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 그를 온전한 믿음과 사랑, 기쁨으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은 그에게 그런 세상의 성취를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결국 자기가 바라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얻을 수 없다면 믿음이 약한 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좋으심, 주권에 대한 믿음의 실감이 죽게 될 것이다. 그 상황은 선민이 세상을 향해 스스로 선악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며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판단과 뜻을 고집한다면 그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곧 그 주권과 다스리심을 방해하는 것이 곧 시험에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시험에 들지 않는 길은 스스로 판단하며 소원을 품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내 나라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했으며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믿음의 실감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예수님 그리고 당시 사도와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 마음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쏟아야 하지 않을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에서 배척당하며 수모와 고통을 당했다. 그들이 믿음을 지킨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세상을 판단하고 마음을 쏟으며 세상의 기쁨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드리며 하늘의 아버지를 항상 의식하며 하늘의 기쁨을 구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음으로 세상을 이겼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김은 자신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세상이 필요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이미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는 이 구절은 세상을 향한 내 뜻, 내 나라가 없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며 우리의 믿음이 빗나가지 않기를 구하는 기도가 아닐까? 실제 삶의 현장에서 구원의 믿음이 흔들리는 시험에 걸리지 않도록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세상 탈출과 천국 진입의 생활화가 일어나기를,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마음을 채우며 만족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