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느2:1-11)
왕궁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느2:1-11)
유다가 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왔다. 바벨론도 망했다. 지금은 페르시아 왕국이다. 유다 사람 느헤미야가 왕궁에서 일했다. 술관원으로 왕의 시중을 든다. 어느 날 왕이 그의 얼굴에 수심이 있음을 보고 이유를 묻는다. 늘 왕의 안색을 살피며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는 두려워했다. 조상들의 묘가 있는 예루살렘이 황폐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놀랍게도 왕은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느냐 물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을 부탁한다. 이상한 사건이 아닌가? 왕궁에서 신분의 역전이 일어났다. 왕이 종의 안색을 살피며 그를 정성으로 섬겼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왕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온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나 그는 동족들의 소식을 듣고 슬퍼했다.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조상들의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늘 하늘에 계신 주께 향하고 있었다. 주의 마음에 그의 마음이 닿은 것이다. 심판과 징계는 하셨으나 선민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그들의 고난에 슬퍼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에 그이 마음이 접속하며 감동되었다. 왕이 측근인 그가 하나님의 측근이 되어 그들을 위해 슬퍼하며 기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주신 소원을 그가 마음에 품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왕의 마음도 움직이셨다.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세우도록 왕이 주의 종을 섬기게 하셨다. 왕은 그를 예루살렘 총독으로 임명했다. 왕도 느헤미야도 모두 자기 현실의 이익과는 무관한 일에 열심을 내며 실행했다. 이렇게 사랑과 공의의 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과 뜻은 세상을 향해 펼쳐지고 있다. 문제는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며 밀착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닐까? 느헤미야는 보이는 세상의 좋음과 육신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늘 하늘을 바라보며 주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그에게 하늘의 뜻이 내려와 소원이 되고 일생의 사명이 되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상하게 세상이 그를 섬기며 그의 삶을 통해 하늘에서 세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시대 우리는 어떻게 그런 삶을 본받을 수 있을까?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드리며 밀착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 외에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요14:6). 예수를 내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며 그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 승천의 길에 머물 때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성령을 만날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수의 옹달샘처럼 그는 그 생명과 진리의 말씀과 은혜를 받아 흘려보내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오늘도 느헤미야처럼 성령의 감동을 얻고 소원을 품으며 허락하시는 소명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긍휼과 은혜로 지키며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믿음으로 주를 찾는 자에게 그 영광을 보이며 소원을 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언약의 말씀으로 혼돈과 공허, 어둠의 땅에 생명과 진리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여시고 마음을 드리는 자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시며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오직 아버지께서 주시는 생각과 뜻을 따라 말하고 행하게 하소서. 육의 일이 아니라 먼저 영의 일을 생각하며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