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느12:31-47)
그들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느12:31-47)
“그들은 희생 제사를 드리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내들, 어린이들도 기뻐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성벽을 하나님께 봉헌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두 무리를 이끌고 성벽에 올라가 양쪽으로 걸었다. 합류하며 성전에 모인다. 제사하며 기뻐한다. 그들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그들은 무엇으로 기뻐했을까? 그들의 기쁨을 생각한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주를 떠나 세상에 마음을 쏟으며 불순종한 죄를 깨달았다. 울며 슬퍼했다.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말했다(느8:10).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들을 언약 백성으로 택하신 주의 사랑과 뜻을 알았다. 부패한 세상과의 차단을 의미하는 성벽을 삶의 현장, 그리고 마음에 세웠다. 높은 성벽 위를 행진하며 주의 거룩하심, 그 사랑과 은혜를 찬양했다. 그들의 마음이 세상을 떠나 하늘을 향했다. 선민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기쁨을 주셨다. 그들의 마음이 세상과 육신을 떠나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을 둔 대상의 기운에 휩쓸린다. 돈, 권력 등에 마음을 둔 자는 평생 그런 것들을 섬기며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들의 기쁨은 세상의 것이 아니다. 하늘의 복이다. 그들은 육체의 현실이 아니라 주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을 바라보며 기뻐한다. 희생 제사와 함께 자기를 드렸다. 성전을 위해 헌금했다. 성전에서 늘 그들을 위해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 레위인 등이 먹을 양식도 모았다. 은혜로 기뻐하며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세상과 육신의 것들에 마음을 쏟지 않았다. 아마 그런 것들을 바라본다면 기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한 살아계심과 선하심, 그 주권과 권능을 바라고 믿고 기뻐했다. 이처럼 믿음은 주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며 하늘의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것이다. 세상의 성공과 육신의 형통을 사랑하며 그 수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면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여전히 타락한 세상, 부패한 육신에 마음을 두고 그런 것으로 만족과 기쁨을 구하는 것이다. 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다름이 없으며 선악과를 계속 따먹는 삶이다. 주의 사랑과 은혜를 무시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를 높이는 세상을 주는 정하신 때 당신을 드러내며 심판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무엇으로 기뻐하는가? 택하신 자녀답게 마음에 성벽을 쌓고 언약의 말씀을 따라 정결한 삶으로 예배하며 그 은혜로 기뻐하는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그 기쁨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가?
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 사랑으로 지으시고 완전한 기쁨으로 이끄시는 주께 감사합니다. 말씀을 떠나 저주받은 땅과 육신의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는 삶은 심판과 재앙의 길입니다. 말씀을 깨우친 선민들은 성벽을 쌓고 제사하며 구원의 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참 성전이신 예수를 따르며 그 말씀을 깨우치는 사명자들을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우리의 삶을 봉헌합니다. 늘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소명을 이루게 하소서. 다시는 벽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세상과 육신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