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바람을 먹고 동풍을 쫓는 선민(호12:1-14)

되어지는대로 2024. 10. 15. 05:36

바람을 먹고 동풍을 쫓는 선민(12:1-14)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 에브라임이 바람을 먹었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 뜨거운 동풍을 따라간다. 거짓말과 폭력을 일삼는다. 신흥 권력 앗수르와 조약을 맺고 구권력 애굽에 공물을 보낸다. 말씀을 떠나 험악하며 헛된 길을 따르는 선민 이스라엘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고 언약을 맺으셨다. 그들과 시비를 따지자고 하신다. 그들의 마음에 바람이 들었다. 거짓과 폭력으로 육체의 소원을 이루려 한다. 땅의 권력자들과 조약을 맺고 공물을 바친다. 뜨거운 동풍을 따르는 것과 같다. 죄와 죽음의 저주, 재앙을 택하는 삶이다. 선민이 언제부터 세상의 부와 권력 등 헛된 바람을 따르는가? 하나님은 야곱의 예를 든다. 그는 태어날 때 형의 발꿈치를 붙잡았다. 거짓말을 일삼는 교활한 자다. 어른이 돼서는 감히 하나님과 씨름하고 끝까지 이기며 자기 뜻을 관철하려 했다. 자기 부인과 순종을 모른다. 홀로 황량한 들판 벧엘에서 하늘의 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도 보았다. 하나님의 주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다. 자기 앞의 미래, 곧 세상의 길만 보고 있었다. 세상의 존재감과 육신을 만족시키려는 욕구로 충만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거래를 시작한다. 자기를 도우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섬기겠다 한다. 하나님은 이미 내 뜻을 이룰 때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 없다. 그는 자기 미래만 생각한다. 그 사닥다리를 통해 하늘의 하나님께 올라가려는 의식조차 없다. 사실 야곱(교활함)이나 이스라엘(하나님을 이긴 자)이란 이름은 부끄러운 이름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받지 말아야 할 이름이다. 그런 세속적인 야곱을 하나님은 참고 비위를 맞추며 믿음의 길로 이끄신다. 악하고 무지한 이스라엘을 선민답게 개조하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노예 프로젝트, 광야 프로젝트를 실행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다. 영생과 진리의 말씀을 등지고 보이는 세상과 육신의 길을 고집한다. 스스로 잘해서 잘 사는 줄 안다. 헛된 바람을 먹으며 결국 사라질 육신의 만족을 위해 험악한 길을 간다. 야곱은 인생 말년에 비로소 험악한 자기 삶과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 그리고 최고의 육신의 복을 누리는 애굽 왕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렇듯 선민은 죄와 저주에 중독된 마음, 공허한 욕망을 끊어내고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 승천의 하늘길을 열어주셨다. 오늘도 그 십자가에서 바람든 마음을 죽이며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영생과 진리의 길을 따라 하늘의 영광, 그 참된 복에 이르며 찬양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 세상은 하늘의 영광을 모르고 보이는 땅의 영광을 향해 뜨거운 바람처럼 달려갑니다. 선민은 땅이 아니라 하늘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닿을 종착지가 다릅니다. 세상과 육신의 영광을 갈망하는 것은 천국 자녀의 길이 아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땅에서 잠시 받는 환란이 하늘에서 얻는 영광의 중함에 비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바람든 마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깨끗이 씻겨지고 오직 아버지의 이름만을 거룩히 여기며 영생과 진리의 길을 따르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이끄소서.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땅에서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