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의 마음이 돌아갈 곳(호14:1-9)
선민의 마음이 돌아갈 곳(호14:1-9)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네 죄악 때문에 네가 넘어지게 됐다. 너희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에게 말하라. 죄악을 제거해 주시고 은혜로 받아주셔서 우리의 입술의 열매를 드리게 하소서. 앗시리아가 우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손으로 만든 것을 더 이상 우리의 신이라 말하지 않겠습니다. 고아가 긍휼을 받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서의 결론이다. 선민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 외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한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께 오지 않았다. 여전히 땅에 마음이 있다.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1절의 ‘여호와께’는 하나님이 그들 마음의 귀착지이며 종착지임을 가리킨다. 2절이 ‘여호와께로’는 그 길의 방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향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께 마음이 가서 종착지로 여기며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는 세상과 육신을 사랑하며 바라본다. 저주받은 땅과 육신에 마음이 머무른다. 땅에서 주의 이름만 부른다. 세상의 재물과 명성 등을 영광중에 바라보며 주의 도움으로 그런 것을 위해서 예배한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 사랑을 하늘에 계신 주께 드리지 않는다. 돈, 권력, 명성 등에 쏟으며 자기 뜻을 위해 하늘의 능력만을 동원하려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불신하며 자기 판단과 의를 고집한다. 창조주 앞에서 불의의 삶이며 죄다. 사탄의 말을 따라 불의의 길을 가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서야 한다. 주는 은혜를 베푸시며 그들의 죄악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입에서 탐심과 정욕의 열매가 아니라 찬양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권력자나 사람이 만든 우상을 의지하지 않으며 세상에 대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아와 같은 마음으로 하늘의 아버지만 바라볼 것이다. 독생자 예수도 저주받은 땅에서 그렇게 살아내며 본을 보이셨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프로젝트가 아닌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마음이 세상에 대해 죽는다면, 세상의 고아와 같은 그는 놀라운 반전을 경험할 것이다. 주께서 모든 일을 선으로 이끄실 것이다. 하늘의 사랑과 기쁨, 그 놀라운 영광에 취할 것이다. 영생과 진리의 축복, 곧 천국을 땅에서부터 실감하며 감사의 찬양을 할 것이다. 또한 성령이 그를 이끌어 하늘에서 세워진 뜻을 땅에서도 이루게 할 것이다. 그 은혜가 마음이 하늘 아버지께 돌아갈 때, 곧 십자가의 예수와 하나님의 불빛이 의식의 방에 환히 켜져 있을 때 일어나지 않겠는가? 오늘 우리 마음은 무엇을 향하며 어디에 있는가? 과연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과 좋으심, 그 영원한 사랑에 마음이 닿고 있는가? 여전히 육신의 영광을 소원하며 내가 하겠다는 집착과 미련을 벗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합함이 바로 세상에 대해서 고아가 되고 성령을 받아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에 이르는 길이 아닌가? 오늘도 주님 안에서 세상에 대해서는 고아와 같은 마음으로 하늘의 아버지를 소망하며 그 기쁘신 뜻이 삶의 현장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 죄와 죽음의 저주에서 탈출하며 영생의 나라에 인도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스스로는 벗을 수 없는 멍에를 그리스도께 드리며 벗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도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 원합니다. 그 안에서 하늘의 아버지께 닿으며 생명과 진리의 복된 흐름이 이어지게 하소서. 삶의 현장에서도 그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되게 하소서.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에 참여하며 기쁨으로 찬양하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