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앞서시는 하나님(시68:1-18)
일어나 앞서시는 하나님(시68:1-18)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의인은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즐거워할지어다. 주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황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 앞에서 뛰놀지어다. 거룩한 처소의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다윗이 위기를 맞았다. 원수들로 인한 환란이다. 현실은 의지할 데 없는 고아, 무능한 과부와도 같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 말씀에 순종했다. 그는 떳떳하다. 주 앞에서 그는 기뻐하며 찬양한다. 그의 믿음의 현실을 생각한다.
이 시편은 모세의 찬양을 인용하며 시작한다(민10:35). 황량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움직일 때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가 먼저 출발했다.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앞서셨다. 이스라엘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의 현장, 미지의 길과 환란 속에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승리를 바라보며 찬양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사랑하시는 아버지이며 공평한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믿는 자는 모든 걱정과 염려,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실로 믿는 자에게 현실은 육체로 만나는 세상의 현실과 다르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주권을 보았다. 사울 왕과 군사들 누구도 보지 못한 영적 현실을 믿었다. 엘리사도 집을 포위한 아람 군대 앞에서 하늘의 군대를 먼저 보았다. 그처럼 온전한 믿음으로 보는 현실은 보이는 현실과 다르다. 마음이 세상과 육체에 사로잡히며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민에게 현실은 사라질 세상과 육체의 현실이 아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 나라가 현실이다. 폭풍으로 요동치는 배에서 제자들은 두려움으로 떨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예수는 잠을 주무셨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며 책망하셨다. 제자들이 보는 현실과 믿음의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밀착하면 그 인생은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된다. 주께서 일어나 앞서신다. 그를 위해 하늘에서 세우신 뜻을 땅에서도 이루게 하신다. 그러나 먼저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 한다. 오늘 나는 어떤 사실을 내 현실로 보는가? 고아는 아버지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그는 이제 고아가 아니다. 그 인생은 하늘의 아버지께서 책임지신다. 스스로 비전을 품고 의지를 강화하며 애쓸 필요가 없다. 내일 일을 염려하며 스스로 짐을 지지 않는다. 매일 아버지가 앞서시는 길을 따라 하루를 살 뿐이다. 그러므로 선민이 평생 할 일은 하늘 아버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기뻐하며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예수께서 인자의 몸으로 땅에 오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연쇄 과정으로 구원의 하늘길을 보여주셨다. 그 길에서 내려오시는 성령을 만날 것이다. 과연 오늘 나는 하늘 아버지의 계심과 좋으심, 그 나라를 내 현실로 여기며 즐거워하는가? 별세와 부활, 승천으로 이끄시는 십자가의 주님과 하늘 아버지를 소망하며 성령을 따르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인생의 광야 길을 긍휼과 사랑으로 앞서시며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죄에 젖은 육체를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며 그 십자가 길을 따르게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눈으로 그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감사와 기쁨과 기도로 살게 하소서. 성령을 따르며 그 은혜를 나누며 찬양하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