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예수님을 대하는 방식(계1:9-20)
신자가 예수님을 대하는 방식(계1:9-20)
“여러분의 형제이며 예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를 함께 나누는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섬에 있었습니다. 나는 주의 날에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예수께서 요한에게 나타나셨다. 말씀하셨다. 천상의 일을 보게 하셨다. 네가 본 것을 기록해 전하라 명하셨다. 그가 본 주님, 말로는 감히 설명하기 어려운 그 상징들을 묵상한다..
요한은 예수의 공생애 3년을 동거동락했다. 사랑받는 제자였다. 스승의 죽음과 부활, 승천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노년의 그는 밧모섬에서 스승 예수를 다시 만난다. 그가 본 예수는 전과 다르다.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가 있다. 세상의 어떤 왕보다 지극히 높으신 진짜 왕이시다. 머리는 눈처럼 희다. 흠 없이 깨끗하고 완전하시다. 눈은 타오르는 불과 같다. 어떤 부패와 부정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발은 청동과 같다. 그 발아래 부서지지 않을 것이 없다. 강하시다.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 폭포 소리 같은 그 음성은 모든 소리를 압도한다. 손에 일곱별, 곧 교회를 이끄는 사자들을 들고 계신다. 입에서는 날선 검, 곧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얼굴은 해가 강하게 비추는 것 같다, 그 앞에서는 어떤 어둠도, 근심과 걱정도 사라진다. 그분 앞에서 요한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엎드려졌다. 그가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살아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으나 보라, 나는 영원토록 살아있는 자니 나는 죽음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분은 옛날 그가 좋아하던 스승이 아니었다. 엄위하신 주 하나님이시다. 그는 죽은 자처럼 그 앞에서 경배한다. 마음은 경외심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존재감을 뛰어넘는 완전한 존재감으로 충만하다. 영원히 살아계시며 통치하시는 창조주의 영광에 마음이 닿은 것이다. 그 영관에 비하면 세상, 곧 저주받은 땅에서 육체로 사는 삶은 그 자체가 환난이 아닐까?.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땅에 와서 그 환난을 겪으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 나라를 위해 인내하셨다. 인자로 땅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명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셨다. 땅에 남은 제자들은 그 환난과 나라와 인내를 나누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 길을 따른다. 주 예수를 유일한 왕으로, 태양처럼 여기며 부패한 육신의 나를 벗고 믿음의 나로 살아간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살아계심, 그 완전한 존재감과 좋으심이 충만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살 것이다. 요한이 그런 것처럼 오늘 내 마음에도 하나님과 십자가의 주님이 첫 번째 존재감과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신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어린양, 그 이름 앞에서 나는 죽은 자처럼 경배하는가? 지상의 모든 생명과 일과 관계의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주님이 부르며 이끄시는 길, 저주받은 땅에 열어주신 그 별세와 부활, 승천의 하늘길에 온 마음을 드리며 참여하는가?
거룩하신 주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부르며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원의 세계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몸을 내 것으로 입는 믿음이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주를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창세 전에 택하신 은혜로 그 말씀을 들으며 천국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 요한처럼 오늘 우리의 마음도 하늘 아버지의 그 영광으로 채우소서. 몸으로 사는 언제 어디에서나 그 말씀을 놓치지 않으며 별세와 부활, 승천의 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육체의 나가 아니라 믿음의 나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