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비천함, 경외심이 복을 받는다(눅1:39-56)

되어지는대로 2024. 12. 24. 06:13

비천함, 경외심이 복을 받는다(1:39-56)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영이 내 구주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세대가 나를 복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전능하신 그분이 내게 위대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시며 그분의 자비가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마리아가 기뻐하며 찬양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며 은혜를 베푸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찬양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마음을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을 비천한 여종이라고 고백한다. 비천함은 세상이 좋아하며 인정하는 가치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시골에 사는 그녀에게는 내놓을 것이 없다. 세상에는 부자와 권력자들, 성취와 명성을 이룬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비천한 여인을 택하셨다. 위대한 일을 베푸신다. 그 자비와 은혜의 역사는 경외심, 곧 하나님을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자에게 내려온다. 돈과 권력, 명성 등을 원하고 만족하며 그런 것들이 없어질까 두려워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죄와 저주에 갇힌 인간의 본성적 비천함을 잊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으로 인해 있게 된 세상과 육신의 것들을 기쁨과 만족의 대상으로 택하고 소유하며 자신의 비천함을 놓친 교만한 자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마음으로는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부자, 교만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마리아는 비천한 상태로 살고 있었다. 숙명적인 비천함이다. 귀족도 부자도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소망을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께 두었을 것이다. 주께서 외면하신다면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처럼 세상과 육신의 대상 때문에 하나님을 놓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다. 그 비천함과 경외심이 땅에서 최고의 복,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예수께서 인자의 몸으로 땅에 오시고 머리 둘 곳 없이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는가? 가장 비천한 자리이며 오직 하늘의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리인 그 십자가로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는가? 그 십자가 죽음의 자리가 죄와 저주에 젖은 사람의 마음이 거듭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과연 오늘 우리 마음은 어떤 자리에 있는가? 여전히 돈과 명성 등 세상과 육신의 영광을, 교만한 자리를 소원하며 구하는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완악함이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 안에서 청결한 마음으로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에 연합하며 마리아처럼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올릴 수 있기를 오늘도 소원한다.

 

   은혜를 베푸시는 주 하나님, 낮고 비천한 인생을 하늘의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자리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하늘에 계신 주를 우리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비천한 우리도 주님 안에서 함께 사랑하시며 기뻐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마리아가 드린 찬가처럼 감사와 기쁨의 삶으로 예배하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이끄소서. 삶의 현장에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하늘의 참된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