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신다(요2:13-25)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신다(요2:13-25)
“예수께서 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가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가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를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그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성전 정화 사건과 믿음에 관한 말씀이다.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그들 속에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들 마음에 있는 것을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전의 의미, 곧 어린양의 죽음에 연합하는 회개와 하나님 사랑은 없다. 그들은 세상의 돈과 명성 등을 좋아한다. 성전에서도 돈을 위해 장사한다. 속에 탐심과 정욕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 그 주권에 대한 의식이 없다. 예수가 기적을 행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과 천국의 있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하며 또한 그들과도 함께하실 수 있다는 표적이다. 그러나 그 표적을 그들은 자기 뜻을 이룰 기회로 받아들인다. 예수를 통해 자기 소원을 이루려 한다. 외적인 세상과 육신의 성취로 만족을 얻으려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관심이 없다. 타락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며 겉으로만 그 이름을 받으려 한다. 환경과 처지의 개선만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로는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들에게 주님은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의 몸을 맡기지 않으신다. 하나님도 그들을 천국 자녀로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미 성전을 허락하셨다. 대속의 어린양, 그 죽음에 연합하며 창조주를 등지고 피조된 세상을 사랑하는 죄를 벗고 주께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성전과 주의 이름을 이용하며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악을 행했다. 세상의 성공과 번영에 몰두했다. 주님은 그들을 믿지도 받지도 않으신다. 세상과 육신, 곧 겉에 마음을 쏟으며 예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며 기복적 종교심이기 때문이다. 속으로 믿고 하늘로부터 거듭난 자가 온전한 믿음의 성도다. 그 길이며 증거는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으신 예수를 영접하며 그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그 죽음을 세상에 대한 내 죽음으로 동일시하며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입고 함께 마음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그는 주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소망하며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세상과 그를 향한 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속에 여전히 세상의 존재감과 좋음의 욕구, 갈망이 가득하다면 성도가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늘 밥을 먹듯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그 부활의 길에 동참하는 자가 성도다. 그러나 지금 내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뜨거운 갈망이, 순수한 기쁨이 있는가? 과연 예수께서 몸을 맡기시는,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받을 수 있는 믿음, 그 소망과 사랑이 내게는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이 땅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전능하며 신실하신 사랑으로 창조적 구원의 뜻을 성육신하신 예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으로 이루셨습니다. 오늘도 그 부르심과 인도를 따라 우리 마음도 별세와 부활, 승천의 주님 안에서 하늘의 아버지께 이르기 원합니다. 지상의 몸으로는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그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그 은혜의 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