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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8일 오전 09:16

되어지는대로 2019. 4. 8. 09:17

종인가, 아들인가?(갈4:1-11)

바울은 율법을 초등 교사로 비유한다. 당시 상속자가 어릴 때에는 종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버지가 정해놓은 때까지 후견인과 관리자 아래 있었다. 귀족의 아들이 노예 신분의 교사에게 배웠듯이, 신자들도 어릴 때는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 아래 종노릇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두셨다.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선언한다. “여러분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이다.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상속자이다.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했지만 이제 하나님을 알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시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초보적인 것들로 돌아가 종노릇하려 하는가?” 종노릇과 아들노릇의 차이를 생각한다.

종은 두려움으로 강제적 요구에 복종한다. 잘못하면 처벌의 대상이다. 그러나 아들은 사랑과 돌봄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순종한다. 실적에 따른 징계와 보상보다 더 깊은 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어떤 형편에서도 버림받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므로 종과 다른 목적과 태도로 일을 한다. 종노릇과 다른 아들노릇이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어찌 종노릇을 하겠는가? 물론 진리를 모르던 시절, 어릴 때에는 법과 형식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그러나 진리를 알았을 때에는 형식을 넘어 더 높은 본질로 순종한다. 오늘 나는 창조와 구원의 주이시며, 진리와 사랑이신 주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사는가? 여전히 두려움으로 섬기는가? 아들의 자유와 담대함, 용기와 기쁨이 내게 있는가? 없다면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육신으로 오시고 율법 아래 사신 주님은 구속의 십자가를 통해 종들을 자녀로 세우셨다. 바울의 격한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왜 두려움으로 사는가? 담대한 믿음, 감사와 기쁨, 충만한 사랑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위대한 나라, 거룩한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를 오늘과 내일의 자녀로 부르신 주께 감사한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백성, 영광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나라로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두려움과 낙심, 슬픔 속에서 놀라운 사랑과 지혜의 손길로 구원하시며 평강과 기쁨의 복된 삶을 허락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영의 눈과 귀를 열게 하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능력이, 부르심의 소망이, 주실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알게 하소서. 오늘도 사랑받는 자녀의 정체성을 회복하며 기쁘신 뜻에 순종하며 세상의 모든 방해와 공격을 이기기 원합니다. 성령님의 조명과 인도를 따라 신실한 자녀의 승리와 기쁨을 증언하며 은혜와 축복을 나누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