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표적과 기사가 없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요4:43-54)

되어지는대로 2025. 1. 14. 06:28

표적과 기사가 없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4:43-54)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의 말씀을 믿고 가더니...”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에 오셨다.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에 걸렸다. 왕의 신하가 찾아와 가버나움으로 가서 아들을 고쳐달라 간청한다. 그러나 예수는 가지 않으신다. 네 아들이 살 것이니 돌아가라 하셨다.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며 탄식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불편한 분위기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왕의 신하는 돌아가다가 아들의 열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시각이 어제 예수가 말씀하신 때임을 알았다. 이 일로 그와 가족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예수를 믿은 것일까? 갈릴리의 고향 사람들도 예수를 믿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행하신 일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분명히 예수님의 마음은 언짢으셨다. 그렇게 불편하신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원하시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믿음은 세상과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예수를 향한 믿음이었다. 그들은 표적과 기사를 요구한다. 기적을 보아야 믿는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그런 기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말씀을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하늘의 주 하나님과 관계하고 싶은 뜨거운 소원, 마음의 갈급함이 있었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만나 샘 솟는 생수와 같은 은혜를 체험하며 기뻐했다. 물질과 육신의 것이 아닌 영적인 소원이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예수의 능력을 믿는다. 만족을 주는 기적이 없으면 외면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도 희미해진다. 그 믿음은 원하시는 순전한 믿음이 아니다.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문제들, 즉 나라의 독립과 번영, 사회 정의, 질병, 빈부 차이 등을 해결하려고 오시지 않았다. 죄와 죽음의 저주에 갇힌 인생을 영생과 진리의 구원, 곧 십자가 연쇄 과정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이끌기 위해 오셨다. 그들의 마음이 저주받은 땅을 탈출해 하늘에 오르도록 십자가 연쇄 과정을 통해 구원의 하늘길을 열어주려고 오셨다. 저주받은 땅, 타락한 세상 밖으로 불러내 은혜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의 구원을 얻는 믿음은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하신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해결사 예수의 능력을 바라며 만족하는 믿음이 아니다. 이 시대 신자들도 대부분 세상과 육신의 문제로 인해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과연 오늘 나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내 본성적인 죄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는 아는가?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진실로 믿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하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선하심, 그 전능하신 주권을 정말 믿는다면 지금 내게 무엇이 부족하며 왜 표적과 기사가 더 필요하겠는가?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보이고 들리는 세상과 육신의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며 구원을 베푸시는 그 긍휼과 사랑을 믿습니다. 몸으로 만나는 어떤 문제보다 중요하고 절박한 것이 주께 마음을 돌이키며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의 본분을 회복하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 은혜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그 나라, 그 영광을 바라보며 찬양하게 하소서. 영생과 진리의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