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려고 찾아온 사람들을 질책하는 예수(요6:22-40)
따르려고 찾아온 사람들을 질책하는 예수(요6:22-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을 본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기까지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나는 바로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너희에게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구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흥분한 군중은 예수를 임금 삼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을 흩으셨다. 다음 날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을 차갑게 대하신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유를 생각한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수고하는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께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을 배려와 포용으로 대하지 않으신다. 그 사건은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 하신다. 당신 안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 그 살아계심과 선하심, 전능하신 주권을 드러내는 표적이다.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사모해야 한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자기들 안에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를 소원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육신에 매인 그들은 그 표적, 곧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동하지 않았다. 육신의 만족을 주는 기적에 감동했다. 수고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배부름, 곧 육신의 만족을 위해 당신을 찾은 것은 믿음이 아니라 하신다. 그런 소원을 위해 내가 너희 주님이 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그런 이유로 보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떡이라 하신다.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먹고 너희 비어있는 마음을 채우라 하신다. 당신의 죽음을 먹으라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그의 죽음(십자가)에 연합하므로 타락한 세상과 육체의 노예로 사는 자기를 죽이며 하나님으로 마음이 허기를 채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시대 우리는 어떨까? 보이고 들리는 정치, 경제 등 세상의 문제들은 얼마나 답답하며 안타까운가? 다급한 육신의 문제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 우리 앞에서 주님은 없어질 것을 위해 마음을 쓰지 말라 하신다. 영생의 구원을 위해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먹으라 하신다. 오병이어 사건은 유월절에 일어난 표적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억해야 한다. 유월절 출애굽의 날에 어린양의 고기를 먹듯이 예수의 죽음을 먹으며 죄와 저주의 땅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그 별세와 부활의 길을 따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영적 출애굽이며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영생의 구원을 위해 선민이 할 일은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전부다. 세상과 육신을 향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 뜻을 이루실 것이다.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과연 나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그 죽음을 먹으며, 죄와 저주에 매인 나의 죽음을 고백하며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육체로 만나는 세상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와 천국의 있음과 좋음, 그 영광이 내가 마음을 쏟을 내 현실임을 믿는가?
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주권과 선하신 뜻으로 영생의 구원을 허락하시는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통해 에덴의 회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하늘길을 바라봅니다.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영생의 양식으로 먹으며 그 사랑과 은혜의 길을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시험에 들지 않으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