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사람들이 예수를 떠나는 이유(요6:60-71)

되어지는대로 2025. 1. 22. 06:29

사람들이 예수를 떠나는 이유(6:60-71)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또 이르시되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않으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다 하시니라. 그때부터 예수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떠나고 다시는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오병이어 사건을 마무리하는 결론적 말씀이다. 따르겠다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배려도 포용하지도 않으셨다. 제자들을 붙잡지 않고 오히려 떠나게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그리고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는 말씀의 진실을 생각한다.

 

   수천 명을 먹이는 능력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려고 찾아왔다. 기적을 보아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따르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에게 주님은 차갑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육신으로 만족하며 그런 세상을 원하지만 내가 살리려는 것은 영이며 육에는 무익하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육의 도움을 위해서는 내게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의 해결, 혹은 개선을 위해 나는 보냄을 받지 않았고, 보여주신 기적도 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다는 표적이며 너희가 세상에서 안주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는 그의 십자가 죽음, 곧 그의 살과 피를 먹고 출애굽하듯 출세상하며 정말 소중하고 좋은 영생의 하늘길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늘하게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내게로 올 자가 없다 하신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내게 오게 하신 자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자기 임의로 나를 따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냉혹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진지한 사랑의 표시이며 경고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만큼 죄와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 영생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경고와 환난과 연단을 통과해야 비로소 어린양의 십자가 제단, 곧 죽음을 거쳐 하나님께 이르는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 그 가치관과 상식에 젖은 언어체계와 인격으로는 천국의 기준인 십자가 복음, 곧 별세와 부활과 승천의 길을 기뻐하며 따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너는 내 자녀라고 속삭이는 음성이 없다면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생명의 말씀과 별세와 부활의 그리스도 사역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 은혜의 영광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애쓰며 너무 쉽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예배당이 세속화된 것은 아닐까? 주님은 그렇게 세상 기준과 사람들의 기분에 맞추며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다. 천국 기준의 질책과 경고에도 제자들은 그의 십자가 별세와 부활의 길을 따르며 영생을 구했다. 가룟 유다도 세상을 향한 자기 비전과 꿈을 위해 주님을 따르다가 결국 십자가 앞에서 실족하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는 이 냉혹한 말씀 속의 진실이 들리는가? 두려운 말씀과 함께 십자가로 이끄시는 이 믿음의 여정이 마음에 과연 달게 느껴지며 감사와 기쁨으로 따르고 있는가?

 

   영생과 진리의 주 하나님, 사랑과 은혜로 주신 복음은 육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며 참된 기쁨으로 이끄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여전히 세상과 육신의 요구와 미혹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별세와 부활의 길을 보여주시고 성령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따라 하늘 아버지께 마음이 이르기 원합니다.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구하며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 은혜의 길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랑과 공의의 말씀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건지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