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아무리 들어도 믿지 않는 이유(요10:22-31)

되어지는대로 2025. 2. 6. 06:00

아무리 들어도 믿지 않는 이유(10:22-31)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다.” 예수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밝히셨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일을 한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 그들이 당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 하신다. 목자와 양의 비유로 말씀하신 의미를 생각한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그 뒤를 따른다. 스스로 판단하며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다. 직접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것은 목자의 일이다. 양은 자기 목자만 바라보며 따를 뿐이다. 예수님은 그런 목자와 양의 관계로 그들을 만나기 원하신다. 그 관계가 아니면 어둠의 땅에 빛으로 생명으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며 영생의 길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세상에서 자기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로마로부터의 해방, 다윗 왕국의 재현, 형통한 삶 등 세상의 영광을 꿈꾸고 있다. 남들보다 많이 가지며 더 높아지기를 원한다. 자기 문제와 소원을 풀어줄 그리스도를 기대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세상의 해결사로 오시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처럼 저주받은 땅과 육의 삶에서 탈출해 영생과 진리의 나라, 곧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데려가려고 오셨다. 그들이 영원한 사망에 이르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복이며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하나님과 천국, 영생과 진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천국에서 배제되는 멸망이 얼마나 나쁘고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세상의 존재감과 문제들, 혹은 좋음에 마음이 갇혀 있다. 그러나 개인의 구원이 없다면 세상과 조직의 구원도 없다. 태초에 아담이 취한 선악과 효과, 곧 죄와 죽음의 저주 때문이다. 예수의 양과 도적의 양은 어떻게 구별할까? 예수의 양은 그가 증언하는 십자가 복음을 듣고 반응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의 자아의식, 곧 십자가 의식을 생활화하며 그의 별세와 부활, 승천의 길을 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온 마음을 드린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살아계심과 좋으심, 그 주권과 영광을 점점 더 크게 느끼며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고 매혹된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서 머물자고 할 것이다. 산 아래 세상의 일들은 잊고으며 놀라운 하늘의 영광을 잃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할 것이다. 과연 오늘 우리는 예수의 증언의 말씀을 들으며, 믿음과 소망으로 얻는 하나님과 천국의 있음과 좋음이 느껴지는가? 영생의 기쁨과 영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의식하며 사는가? 정말 예수의 양이라면 세상과 육의 목표와 신념, 좋음은 희미해지며 오직 십자가 예수의 영광만이 마음에 밝히 보여야 하지 않는가?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 아래 영생과 진리의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죄와 죽음의 땅에서 불러내 영생의 세계로 이끄심을 감사합니다. 여전히 땅의 것에 소망을 품고 기쁨과 만족을 추구하는 자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는 시선을 돌려 그 말씀과 그리스도 사건에 마음을 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은혜의 증언에 감사와 기쁨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따르는 양으로 살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이끄소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육신의 모든 완악함에서 벗어나 하늘의 참된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