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으로 드러나는 하나 됨의 신비(요14:15-24)
새 계명으로 드러나는 하나 됨의 신비(요14:15-24)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니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 너희와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볼 수도 알 수도 없기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다... 그날에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신비로운 하나 됨을 말씀하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아들을 믿는 자, 곧 독립적인 네 인격이 연합하며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 의미를 묵상한다.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주 예수를 사랑함으로 시작한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서 마음을 드리면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그 마음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오른다. 성령을 받을 것이다. 그 영은 성도 각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실 수 있다. 영적으로 삼위 하나님이 성도 각자의 몸을 거처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속 사람은 사위일체를 이루고, 겉 사람인 몸은 성령께서 주시는 아버지의 생각과 뜻을 따라 지정의를 활성화하며 말하고 행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의 새 계명을 이루는 성도의 온전한 삶이다. 하늘의 관점에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집에 오르는 것이나, 땅의 관점에서는 우리 몸이 하나님께서 내려와 거하실 처소가 된다. 믿음의 관점에서 십자가의 주님께 마음을 다 드리는 것이며, 그의 의식과 마음은 세상의 존재감과 좋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존재감과 좋음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때 그의 속 사람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며 그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계명의 관점에서, 몸의 행위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로 인정받고 그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 아담은 그 사랑 안에 있었으나 계명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 됨의 사랑을 거부하고 세상을 마음의 집으로 택한 것이다. 사실 계명은 우리를 사랑하며 위하시는 아버지의 바램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 사랑을 실현하는 성도의 삶을 여러 관점에서 반복하며 가르치고 있다. 본문에서 유다의 질문처럼 영이신 하나님은 세상에 당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신다.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죽은 자의 자아의식, 곧 마음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는 성도 안에 성령으로 임하시며 그의 삶을 통해 당신의 있음과 좋음, 선하신 주권과 뜻을 세상에 드러내신다. 이처럼 영생을 이루는 믿음의 삶은 세상에서 쌓은 자기 판단과 신념, 소원 등을 버리고 십자가의 주님을 따라 아버지께 온 마음을 드리며 시작한다. 그 마음은 하늘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며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릴 것이다. 몸은 성령께서 이끄시며 새 계명, 곧 온전한 사랑을 실현하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을 땅에서도 이루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근심이 없는 절대 평강과 기쁨. 영생을 누리는 복된 삶이 아닌가? 과연 우리 안에는 진리의 성령님이 계신가? 오늘도 잠잠히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사위일체의 기쁨과 그 영광을 누리는 성도이기를 소원한다.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그 사랑을 놓친다면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어떤 명분과 희생도 결국 육신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세상과 자기를 잊고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소망으로 따를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봅니다. 진리의 성령으로 이끄소서. 우리 마음도 영생과 진리의 나라에 이르며,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주님 안에서 하늘의 영원한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