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불의하신가?(롬9:14-24)
하나님이 불의하신가?(롬9:14-24)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다. 그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울은 그럴 수 없다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언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원하는 사람에게, 혹은 달음질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주권적인 선택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누구는 항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나를 책망하시는가? 바울은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며 피조물이 창조주를 판단하며 권리를 따질 수 없음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노력을 생각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다. 육신의 혈통, 혹은 소원이나 열심에 달려 있지 않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는 구원을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설명한다. 마치 토기장이가 원하는 그릇을 마음대로 빚어서 만들듯이, 하나님은 그럴 지혜와 능력,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바로를 완악하게 만드신 것도 그 주권에 의한 것이다. 바로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모두가 심판받을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셨다. 그러나 바로는 그대로 악한 행동을 하게 두셨다. 모두 심판받아야 하지만 일부는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선하게 보이는 자, 열심을 내는 자도 결국 하나님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며, 악하게 보이는 자도 하나님은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열심과 노력이 가치가 없는 것일까? 내가 잘하고 못하는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렇치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복음을 듣고 믿기로 선택했다. 열심을 내고 노력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것은 은혜였다. 내 열심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자격 없는 자를 택하시고 도우신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였다. 이처럼 신자는 자기 믿음과 구원을 자랑하며 교만할 수 없다. 겸손히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할 뿐이다. 오늘 나는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절대적 주권의 하나님, 그 은혜의 부르심에 감사하는가? 온 마음을 다해 그날의 완성을 위한 믿음의 여정에 순종하는가?
은혜의 하나님, 사랑과 공의 주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의 통치를 찬양합니다. 죄와 죽음에 갇힌 자녀들을 사랑의 손길로 택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구원으로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은혜로 부르신 이 믿음의 여정에서 헛된 고집과 교만을 버리고 신실한 자녀의 사랑과 순종으로 따르기 원합니다. 긍휼의 그릇으로 택하셨으니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빈 자리, 연약한 마음을 채워주소서, 담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모든 미혹과 도전을 이기며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