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들의 참담한 반응(렘44:11-18)
선민들의 참담한 반응(렘44:11-18)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죄와 심판의 예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언자에게 거친 말로 응답한다. “당신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한 말에 대해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조상들이 예루살렘에서 했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희생 제물을 태우고 전제물을 부어드릴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막을 것도 많았고 부유했고 어떤 재앙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제사를 멈춘 때부터 모든 것이 부족했고 칼과 기근으로 망했습니다.” 그들은 피신한 이집트 땅에서도 우상을 숭배한다. 참담한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 그들의 논리와 주장이 맞는가?
우상을 숭배했던 악한 므낫세 왕은 55년이나 유다를 통치했다. 오히려 그때가 좋았다는 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으로 우상 숭배가 금지된 후 재앙이 닥쳤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집트 같은 나라는 하늘의 여왕을 섬기며 지금도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민인 유다 백성들이 그들처럼 하늘의 여왕께 제사하겠다고 말한다. 잘못된 관찰로 인한 착각이며 치명적인 오해이다. 그들은 그들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도, 선하신 성품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이 시대 우리에게도 현실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부유하고 안장된 삶, 재미있는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믿음 생활이 더 불편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신앙보다는 재테크와 자기 계발, 자아실현과 취미 생활 등에 힘쓰는 신자들의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닐까? 그들은 창조주의 선하신 뜻도, 모두가 저주받은 땅의 부패한 인생들이며 시한부 인생을 마치고 결국 주님의 심판대에 설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당장 땅에서 형통하고 즐거운 삶에, 몸에 좋아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십자가의 주님도, 복음의 능력과 은혜도 잊은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 유익을 위한 도우미로 여길 뿐, 온 마음을 드리며 순종할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잘먹고 잘사는 데 관심이 두며,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나라를 간과하고 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적인 진리, 참 생명의 말씀을 의식하며 사는가? 죄와 사망의 악한 권세와 구원의 말씀 앞에서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혼돈과 공허의 땅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기회로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나라를 보아야 하지 않는가?
은혜의 하나님, 놀라운 사랑과 섭리의 손길로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은혜의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전히 완악한 고집과 무지함으로 택하심과 말씀을 거부하고 저주와 재앙의 길을 가는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소음과 몸의 감각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얻기 원합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빈 마음을 채우게 하소서. 충만한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은 은혜의 여정 안에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육신의 악한 이기심과 탐심을 죽이고 새 피조물의 삶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