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9:13) .

되어지는대로 2021. 2. 1. 09:03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9:13)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다.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식사하신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묻는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자에는 의사가 필요하다...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렇다면 세상의 죄인들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일까? 의인은 주님은 관계가 없는 것일까? 본문에서 죄인과 의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답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의인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선민들이다. 죄인은 유대 사회에서 배척받는 세리와 창녀 및 그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과연 그들만 구원받고 경건한 사람들은 천국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일까? 의인과 죄인은 당시 유대 사회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준에 따라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의인이며 세리들은 죄인이라 여겼다. 그들이 만든 사회적 기준으로 의인과 죄인을 구별했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에 의인은 없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들이다. 주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나 스스로 사회적 의인이라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주님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회적 죄인들은 주님을 영접한다. 결국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미천한 사람, 명예도 성취도 없는 자들이 오히려 천국에 더 가깝지 않은가? 세상의 풍요와 번영보다 수치와 열등감에 시달리는 자들이 은혜에 더 열려있었다. 사회적 신분이나 성취, 도덕성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과연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가까울까? 혹시 바리새인들처럼 나도 사회적 의인, 혹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항상 주님 앞에서 미천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구원의 은혜를 갈망하고 있는가? 세상의 길에서 눈을 들어 하늘 아버지께 향하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감사함으로 바라보는가?

 

은혜의 하나님, 죄와 사망과 멸망의 땅에서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구원으로 부르시며 이끄시는 주께 찬양과 영광을 올립니다.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그리스도를 간과하고 여전히 세상의 문을 두드리며 의인이라 착각하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 아래 십자가와 부활의 자리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세상의 어떤 신분과 소유보다도 귀하고 소중한 이 하늘길을 감사와 기쁨으로 영접하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담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육신의 소리를 이기며 천국 자녀의 오늘을 살아내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