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속에서 별세의 길을 가다(마20:17-34)
오해 속에서 별세의 길을 가다(마20:17-34)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별세를 위해 가시는 중이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며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오히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청탁을 올린다.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오르실 때 자기 아들들을 높은 자리에 앉혀달라 한다. 이 일로 제자들은 분개하며 다툰다. 주님은 천국에서 큰 자는 종이 되어 섬기는 자이며,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사람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하신다. 그들은 능력의 주님이 죽으러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으실 때까지 이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오해가 없을까? 주님이 가르치신 섬김은 어떤 것일까? 무조건 남을 위하는 것일까?
그들은 주님이 로마를 몰아내고 다윗 왕국을 재현하며 세상의 번영과 영광을 취할 것으로 생각했다. 악을 제거하고 혁명과 개혁으로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실 것을 믿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위해 죽으러 오셨다. 세상의 정치와 경제 등 환경의 개혁과 번영을 위해 오시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에 천국을 가져오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할 목적으로 오셨다.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의 관심을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 돌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십자가와 부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오셨다. 세상에 집착하는 그들의 마음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드려지고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맡겨지기를 원하셨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도 환경과 형통을 위한 도우미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나? 주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 마음이 드려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내 주체성과 욕망도 버려야 한다. 또한 섬김이란 남의 소원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책망하고 지도자들을 비난했으며 성전에서는 상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셨다. 섬김이란 그들의 최선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뜻대로 그를 대하는 것이 바른 섬김이다. 그러므로 섬김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일이며 섬기는 자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나는 바른 믿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있을까? 하늘 아버지의 주권과 섭리 아래 바르게 섬기며 천국 자녀의 여정을 걷고 있을까?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생명과 기쁨을 누리던 에덴을 벗어나 심판과 저주의 세상을 사는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영생과 진리의 나라로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셨으니 이 길을 따라 아버지께로 돌아갈 그날을 바라봅니다. 남은 육신의 삶도 아버지의 주권과 섭리 아래 바르게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보게 하소서. 주님께 드린 마음이 하늘 아버지께 닿게 하시고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과 기쁨을 알게 하소서. 오늘도 모든 삶의 현장에서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성취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