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가장 큰 고통...(마26:36-46) .

되어지는대로 2021. 3. 26. 08:56

가장 큰 고통...(26:36-46)

 

겟세마네 기도 장면이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며 나와 함께 깨어있도록 하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신다. “내 아버지,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둬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신다. 아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 스테반 등 순교자들은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다. 고통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고통을 생각한다.

 

순교자의 고통과 다르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분이 하나님을 빼앗기는 고통이다. 이제 사랑하는 아버지의 저주를 받아야 한다. 한 번도 떨어져 보지 못한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이다. 사랑에서 저주의 자리로 떨어지는 아픔이다. 스테반은 돌에 맞아 죽지만, 오히려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졌다. 세상의 고통과 문제가 사라지고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이 났다. 어둠의 땅에서 영원한 생명의 천국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빛 속에 계시던 주님은 암흑으로 들어가신다. 가장 큰 고통, 하나님과 격리된 저주의 상태로 들어가신다. 본래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날 때 드려야할 기도였다. 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몰랐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택하시며 그 기도를 하신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이 고통을 왜 택하셨을까?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신자들의 삶의 이유와 근거도 오직 하늘 아버지께 있지 않는가? 오늘 하늘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가? 여전히 세상을 좋아하고 기대하며 의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누가 주님의 이 기도 앞에서 내 고통과 내 뜻을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의 기도도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와 천국의 빛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달라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떠나 죄와 사망의 길을 가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통로를 열어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길을 통해 영생과 진리의 나라로 부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과 육신의 미혹을 이기고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안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함께 하시는 성령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알게 하소서. 감사와 기쁨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