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가만히 있으라는 두 음성...(출14:1-14)

되어지는대로 2021. 5. 7. 08:51

가만히 있으라는 두 음성...(14:1-14)

 

이스라엘은 홍해 앞에서 생사의 위기를 맞는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복수심에 불타는 군대가 몰려온다. 두려움과 절망, 원망의 패닉에 빠진다. 그때 모세가 명한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결국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다. 침몰하는 세월호의 학생들도 가만히 있으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러나 구원을 얻지는 못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두 음성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다. 그러나 사지에 몰렸다. 우리가 왜 출애굽했나? 차라리 이집트의 노예로 사는 것이 낫겠다는 불평과 원망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상황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북쪽 해변길이 아니라 홍해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앞으로 그들이 받을 광야 연수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 합리적 판단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모세가 있다. 그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억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잠잠히 있을 때, 그들은 전능하신 창조주의 역사를 보게 된다. 그러나 학생들이 세월호에서 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음성은 세상의 소리일 뿐이다. 우왕좌왕하지 말라는 요구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그들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이 시대 유행하는 명상, 마인드 콘트롤, 마음 비우기, 다양한 종교심 등과 같은 세상의 소리들이 있다. 물론 유익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침몰하는 세상에서 구원을 얻지는 못한다. 단지 마음의 평정, 자아실현 등의 성취가 창조주를 거역하고 가라앉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참된 구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원의 밧줄을 붙잡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있었듯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몸으로 오시고 죽으신 예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잠잠히 있는 것이 부활의 새 생명을 얻는 길이다. 오늘 나는 누구의 어떤 소리를 듣는가? 상식과 판단, 세상의 요구를 떠나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잠잠히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는가?

 

구원의 아버지 하나님, 무한한 사랑과 능력으로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며 자녀들을 영생의 나라로 부르시는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완악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말씀과 십자가 사건을 허락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자녀의 길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영의 눈과 귀를 열어 은혜의 말씀을 듣고 하늘 아버지의 사랑 안에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담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구원의 여정을 따르게 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우리 가운데 아버지의 주권과 뜻을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